오피니언 사설

한·일 관계 더 이상 악화돼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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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최근 일본을 방문한 국회 국방위원들과 만나 "미국이 한국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한국과의 정보 공유 협력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알려진 뒤 외교부와 청와대 등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고 일본 측에 야치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한.일 정상회담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마저 내놓고 있다.

야치의 발언 파동은 두 가지 성격이 있다. 하나는 내용의 사실 여부며, 다른 하나는 제3국 외교관이 타국의 문제에 의도적 목적을 가지고 개입하려 하는 듯한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우선 일본 외교 책임자로서 비록 비공식적 자리에서 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상대국에 대해 결례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측이 경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외무부나 청와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그러한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교적 결례는 지엽말단적 얘기다. 왜 외교적 의전을 잘 아는 직업외교관 출신의 외무차관이 그런 말을 했느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외교적 결례 여부보다는 진실을 더 알고 싶은 것이다.

올 들어 한.일 간에는 각종 악재가 속출했다.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도발을 시발로, 후소샤판 역사 및 공민교과서의 왜곡,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등 일본 정치 지도층의 과거사에 대한 망언과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공언 등이 잇따라 발생했다. 자칫 야치의 발언이 한.일 갈등의 심화를 부르고 이것이 한.미.일 3국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한.일 양국은 북핵이라는 당면한 현안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야치의 발언 문제는 이 정도에서 덮어 두는 게 온당하다. 이를 더 이상 확대하는 것은 양국에 도움이 안 된다. 양국은 6월 하순으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통해 갈등을 씻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