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우디」지위 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5일부터 모로코의 휴양도시 페즈에서 개막되는 제12차 아랍연맹정상회담은 「사다트」 죽음이후 한번 크게 일렁였던 중동정세가 채 자리잡기도 전에 열린다는 점에서 과거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아랍정상회담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사우디아라비아의「파하드」황태자가 지난8월7일제안한 중동평화안 8개항이다.「파하드」8개항은 처음에는 중동정치무대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0월말 미국의 대사우디아라비아 AWACS기 판매결정이 내려진직후 백악관으로부터 긍정적인 발언이 터져나온후 갑자기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이같은 미국의 태도변화는 미국의 중동정책이 「사다트」의 죽음과 함께 캠프데이비드협정으르부터의 점진적인 탈피를 예고해주는 것이었고 따라서 중동에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됐었다.
「파하드」8개항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제7항) 캠프데이비드협정이 갖고 있던 약점, 즉 팔레스타인문제해결을 구체적으로 명백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제4∼6항).
「파하드」안은 제4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권리회복을, 제6항에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창설을 제시하면서 현재 문제가 되고있는 이스라엘점령하의 요르단강서안과 가자지구는 참정조치로 수개월동안 유엔의 감시하에 두도록 제5항에 규정하고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국가창설은 직접 상대국인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생존권인정은 리비아·시리아등 강경아랍국들이 반대하고 있어 「파하드안도 궁극적인 중동평화해결의 열쇠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강경아랍권의 리더격인 리비아의 「가다피」는 벌써부터 『적(이스라엘)을 인정하는 것은 아랍대회를 배반하는 것이므로 적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며 정상회담 불참을 위협하고 나섰다.
PLO도 「파하드」안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결정짓지 못하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아라파트」PLO의장은 『긍정적인 항목이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하지만 『전폭적인 지지는 유보한다』고 밝혔고 PLO내의 최대 파벌인 알파타의 부의장 「아부·이야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파하드안을 아무런 유보조건 없이 수락하면 중요한 평화노력으로 간주하겠다』고 사실상 거부태도를 표명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볼때 폐르시아◀협력협의회(GCC)가 지난 11, 12일 정상회담에서 만장일치로 승인한「파하드」평화안은 페즈아랍정상회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희박하고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전망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아라파트가 지난4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파하드」8개항은 중동평화와 팔레스타인문제의 전반적인 해결을 위한「출발점」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주목되는것은 풍부한 석유자원을 이용, 아랍권의 돈줄을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느정도의 외교역량을 발휘해 아랍권의 의견차를 좁히느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넘치는 오일달러로 국방력강화와 함께 외교역할을 강화해, 아랍권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페즈아랍정상회담이 이러한 사우디아라아가 아랍지도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느냐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파하드」평화안을 거부하고 나온 강경아랍국들의 태도도 이번 페즈정상회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특히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는「파하드」평화안을 두고 공격의 옥타브를 더욱 높일것이 예상된다.
또 갈수록 더해가는 소련의 대중동팽창전략에 위험을 느껴온 아랍권으로서는 이문제를 두고 강경·온건파간에 한바탕입씨름을 벌일것도 분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