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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세계 유일의 겸용 구장 '삿포로 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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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야구장에서 축구장으로’삿포로돔 변신 과정 : 야구장에 깔린 인조잔디를 걷어내고①, 야구장 외야석의 출입문이 좌우로 열리면②, 돔 바깥에 있던 축구용 잔디 그라운드가 통째로 안으로 들어온다③. 큰 사진은 완성된 돔 축구장의 위용. 콘사도레의 서포터스가 카드섹션으로 ‘12번째 선수’라는 뜻의 숫자 ‘12’를 만들고 있다. [홋카이도신문 제공]

▶ ‘명태알을 먹고, 후쿠오카를 먹자’는 문구와 함께 밥에 노란색 조미료로 V자를 새긴 필승 도시락.

일본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 1972년 겨울올림픽이 열렸고, 눈 축제 때는 각국에서 수십만 명이 찾는 눈과 얼음의 도시. 인구 200만 명의 이곳에 2002 한.일월드컵 바로 전 해에 생긴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우주선 같은 둥근 회색의 삿포로돔. 세계에서 유일하게 축구장과 야구장을 겸하도록 설계한 구장이다.

2002월드컵 명승부의 하나였던 잉글랜드-아르헨티나전이 열렸던 삿포로돔. 지난해부터는 도쿄 연고의 프로야구단 '니혼햄 파이터스'가 옮겨와 홈 경기를 한다. 또 프로축구단 '콘사도레 삿포로'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콘사도레는 J리그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시민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콘사도레의 열성 팬들은 종교적 신념 같은 게 느껴질 정도로 내 고장 축구팀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구단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야구팀에 대해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 5시간이면 야구장이 축구장으로

삿포로돔은 삿포로시가 530억엔(약 5300억원)을 들여 2001년 완공했다. 1년에 프로야구 50경기, 프로축구 15경기가 열린다. 방음 장치가 완벽해 콘서트 등의 행사도 자주 치른다. 삿포로돔 옆 2층 건물은 축구단과 야구단이 절반씩 나눠 사무실로 쓴다. 4만2000석의 둥그런 야구장이 사각형 축구장으로 변하는 모습은 흥미롭다. 야구장에 깔렸던 인조 잔디를 둘둘 말아 밖으로 빼낸 뒤 거대한 출입문이 열리면 돔 바깥에 있던 천연잔디 축구장이 천천히 들어온다. 공기부양 방식으로 지상에서 5cm 뜬 상태에서 축구장이 입장해 90도 방향을 틀면 변신 완료다. 돔 방문객은 5시간이 걸리는 이 과정을 고속 촬영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야구장 입장권은 S석 4500엔부터 외야 자유석(어린이) 800엔까지 다양하다. 입장권+도시락+음료수를 합친 '세트 메뉴'는 2800엔이다. 축구 입장권도 4200엔부터 600엔까지다.

◆ 자원봉사.응원 … 생활화된 시민 참여

지난달 말 기자가 삿포로돔을 찾은 날은 마침 콘사도레 삿포로와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빗줄기가 제법 거셌지만 돔 구장 안은 따뜻하다 못해 후끈했다. 왼쪽 골대 뒤 콘사도레 응원단은 깃발을 흔들고, 초대형 유니폼을 펼치며 기세를 올렸다. 가족 단위로 온 관중도 꽤 많았다. 두 살쯤 돼 보이는 꼬마를 포대기로 안고 응원에 열중하는 젊은 주부도 보였다. 지난해 입장 관중을 분석해 보니 가족과 함께 온 경우가 52.2%다. J리그 평균인 50.2%보다 높다. 입장권과 묶어서 파는 '필승 도시락'에는 '명태알을 먹고, 후쿠오카를 먹자'는 쪽지가 들어 있다. 경기 전엔 콘사도레의 치어리더인 '콘사돌(consa doll)' 8명이 나와 율동응원을 했다.

할아버지.할머니들 자원봉사자들이 출입구에서의 입장권 확인, 장내 정리, 서포터스 가입 접수 등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구단 총무부장인 야기누마 사토시는 "17세부터 70세까지 400여 명이 봉사자로 등록했지요. 경기 때마다 100명 이상이 노란 유니폼을 입고 나와 일합니다. 경기장 분위기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구단 입장에서는 경비 절감 효과도 있죠"라고 설명했다.

0-1로 끌려가던 콘사도레는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뽑아내 1-1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다. 자원봉사자와 서포터스가 청소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경기장은 깨끗하게 정리됐다.

"일년 수입 절반을 응원에 써요"
"도쿄 회사 관두고 귀향했어요"

◆ "후원금 내는 보람으로 직장생활"

경기 후 삿포로돔 식당에서 서포터스 대표들과 만났다. 모두 40대 이후 중장년층이다. "우리에게 콘사도레는 생활의 일부 정도가 아니라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 남자는 말했다.

1년 수입의 절반을 원정 응원 경비로 쓰는 사람, 고향에 축구팀이 생긴다는 말에 도쿄의 잘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귀향한 사람도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이유를 "콘사도레에 후원금을 내기 위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가시마 데루미(49.여)는 서포터에서 후원자가 된 경우다. 그는 "돈을 벌어 클럽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부동산 중개회사를 만들었어요. 명함과 가게에 '우리는 콘사도레를 후원합니다'라고 써 붙인 덕분에 작년에 집을 8채나 팔았어요"라고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시민구단의 요체는 '시민-구단-스폰서 사이에 돈이 오가야 하는 것'이다. 상업적인 거래가 아니라 팀을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기 위해서는 내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도 고민은 있다. J1에서 J2로 강등된 2003년 이후 입장객이 계속 줄어들고, 성적은 바닥권을 헤매고 있다. 구단은 수입.지출의 세세한 내역까지 공개하며 경비 절감과 자생력 키우기에 힘을 쏟고 있다. 비싼 용병 선수를 데려오는 대신 어린 선수들을 키워낸다는 '강화계획'도 세웠다. 이들은 꽤나 희망적이다.

콘사도레 후원업체 모임 대표인 사이토 다카시는 "아이가 아무리 성적이 나빠도 포기하는 부모는 없잖아요. 우리는 어린 나무를 키우는 심정으로 콘사도레를 품고 나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삿포로에서 글.사진=정영재 기자

콘사도레 시민구단은 …

'콘사도레 삿포로'는 1996년 4월에 창단됐다. 삿포로 청년회의소가 94년에 "우리도 J리그 팀을 만들자"며 31만 명의 서명을 받은 지 2년 만의 결실이었다. 97년 일본사회인리그(JFL) 우승, 98년 J리그 승격을 시작으로 J1에서 세 시즌을 보냈다. 현재는 J2 소속이다.

삿포로를 중심으로 홋카이도의 상공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창단한 콘사도레는 세 차례 시민주 공모로 5억5000만 엔을 모았다.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으로 공모에 참여한 경우도 있다. 콘사도레 주식 1계좌는 5만 엔(약 50만원)인데 1~19주를 가진 '개미주주'가 7005명이다. 시민주를 제외한 최대주주는 이시야제과(15.67%)다. 홋카이도에서만 판매하는 초콜릿 '하얀 연인'(白い 戀人)을 만드는 회사다. 축구단을 후원한 뒤 5년 만에 매출이 두 배로 뛰자 2000년에 '하얀 연인 파크'라는 연습경기장을 만들어 콘사도레에 기증했다. 이 경기장의 펜스에는 시민들이 연 15만~60만 엔을 내고 제공한 광고판이 걸려 있다.

홋카이도 내에서 축구단을 돕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100여 명의 개인사업자가 가게에 '우리는 콘사도레를 돕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놓았다. 이 문구만 보고 들어와 물건을 사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용액의 1%를 구단에 기부하는 신용카드도 있다. 삿포로맥주는 신제품인 삿포로 프리미엄 한 캔이 팔릴 때마다 1엔의 기부금을 구단에 낸다.

축구단 회장인 이시미즈 이사오는 "본토 사람들에게 질 수 없다는 홋카이도 사람들의 자존심이 축구단을 통해 단결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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