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北核결단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드디어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그렇게도 원하던 이른바 '북.미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만 하면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처럼 믿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주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던 미.중.북 회담은 대화 예찬론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대화 그 자체가 문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북핵 문제 해결은 베이징 회담 후에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 대화 예찬론자들 예상 빗나가

북한은 베이징 회담 도중에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미국 대표에게 통고하다시피했다고 한다. 북한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이 북핵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북한은 핵무기 문제가 미국과의 양자 간 문제라고 주장해 왔지만 자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다자적 문제라는 사실도 확인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물론 미.북 대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의 기본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 대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보유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9.11 이후에 더욱 확고해졌다. 우리는 9.11 테러가 미국 국민에게 준 충격과 장기적인 임팩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그대로 두면 북한이 제조한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다. 북한의 핵무기를 반대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그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의 어떠한 타협도, 보상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만일 북한이 핵무기 제조단계로 들어갔다고 판단하면, 그야말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대응할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이 이른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핵무기를 포기하면 된다.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고 경제교류도 가능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국제사회와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 핵 옵션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에 다른 선택은 없다. 핵 옵션을 택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붕괴뿐 아니라 북한의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상화의 길을 택한다고 해도 위험은 따른다. 김정일(金正日) 정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의 기로에 선 북한의 통치자는 용기가 필요하다.

*** 외부와 관계 정상화 선택해야

불확실성이 없는 결단은 없다. 이미 북한은 2001년 여름부터 경제 운영 방식의 "개선"을 시도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택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경제 운영 방식은 외부세계와의 활발한 교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북한 지도층도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북한은 불가피한 선택을 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끌지 않기를 바란다. 선택의 결단이 지연되면 될수록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동족의 고통은 더 오래 갈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 먹혀 들어가지도 않는 위협은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은 잘못하면 북한의 경제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