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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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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죽음으로 끝을 맺는 두 연인의 비극적 사랑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다.

"1년 만에 폼나게 돌아오겠다"며 서울로 떠난 민재(김민종)는 곧 소식이 끊기고 은지(김정은)는 상경해 요정을 거쳐 군 실력자 허대령(독고영재)의 정부 혜미가 된다.

5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확인하지만 깡패 출신 제비와 고위권력자 정부의 사랑이 순조롭게 해피 엔딩할 리 없다.

*** 개성있는 조연들 두각

'나비'는 전형적인 눈물 짜내기 멜로에 1980년대라는 시대 상황을 걸친다. 민재는 당시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마음과 몸.정신 세 가지를 맑게 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넣던 삼청교육대로 끌려간다.

"오빠가 알던 은지는 5년 전에 죽었어"라며 냉정한 태도를 보이던 혜미는 연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재가 갇혀 있는 곳까지 찾아간다.

여기부터 펼쳐지는 삼청교육대의 살벌하지만 유머러스한 정경은 즐기기에 충분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도사'로 자처하는 강간범(엄춘배), 가짜 발기촉진제를 먹고 성불구가 된 도철(이문식), 도철에게 약을 팔아 견원지간이 됐지만 나중에 그의 매형으로 밝혀지는 광팔(김승욱) 등 생기 넘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비극적인 사랑과 또 다른 축을 이루며 영화를 떠받친다.

'공공의 적'의 산수 등 개성있는 조연으로 잘 알려진 이문식의 연기는 그중 발군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대가 개인에게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정교하게 계산하기보다 영상미에 치중했다. 전반적으로 화면에 멋을 부린 흔적이 역력하다.

*** 영상미에 너무 집착

비.어둠.불빛 등 각종 요소를 활용한 이러한 멋부림은 심지어 진흙밭에서 구르는 삼청교육대 훈련 장면에서마저 두드러진다.

민재의 출소를 기다리는 장면 등에서 보이는 김정은의 자태는 혜미가 아니라 그녀가 출연하는 신용카드 CF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러니 두 남녀의 절박한 상황에서 자꾸 시선이 멀어진다.

멋부림은 계속 늘어지는 뒷부분에서도 확인된다. 혜미를 짝사랑하던 황대위(이종원)는 민재와의 관계를 알게 된 뒤 허대령의 지령을 받아 혜미를 죽인다. 광기에 사로잡힌 그는 훈련소 숙소에 기관총을 난사한다.

민재는 혜미의 시체를 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폐허가 된 성당으로 숨어든다. 마치 '7인의 새벽'의 남자들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이 대목은 장엄한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인상이 짙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동은 풀이 죽는다.

힘 줄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했더라면 괜찮은 멜로 영화가 됐을 법한 작품이다. '흑수선''가문의 영광'의 아트 디렉터를 했던 김현성 감독의 데뷔작이다.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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