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경기도 H요양병원에 대한 안전점검에 나선 총리실 점검팀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창고에 있던 비상발전기를 켜는 순간 연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연기가 심해지자 결국 소방차가 출동했다. 이 비상발전기는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전기안전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H요양병원엔 비상발전기 외에도 6건이 추가로 지적됐다. 전기 누전차단기의 일부 배선이 타서 시꺼멓게 돼 있었다.
경기도의 다른 요양병원은 ‘비상구’ 표시등이 비상구 반대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안전시설이 엉망으로 재배치된 탓이었다. 화재경보 장치가 없었고 가스 저장탱크의 가스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실시한 안전점검 과정은 이처럼 아찔하고 황당한 일 투성이였다. 정기점검에서 지적된 사항에 대해 보완 조치만 잘 했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안전점검을 총괄한 총리실 관계자는 “점검을 많이 한다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며 “형식적인 점검은 오히려 안전불감증만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점검만큼 중요한 것이 후속 조치라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 송파구 한 지하철 공사장의 경우 지난 1년간 123회나 안전점검이 실시됐다. 서울시 84회를 비롯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등 6개 기관이 돌아가며 점검을 했다. 하지만 5월 실시된 점검에서 ▶낙하물 방지 안전망 미비 ▶고정 볼트 불량 ▶대피구 유도등 미설치 같은 단순한 내용이 문제로 지적됐다.
삼성방재연구소 최영화 박사는 “안전점검을 할 때 새로운 것들만 잡아내려고 할 뿐 과거 지적된 문제가 어떻게 개선됐는지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후속 조치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동일 서울대 법안전공학연구소장도 “안전관리 담당자가 다른 일을 겸하고 있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전담자를 별도로 두고 꾸준히 점검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재난 대비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점검에서 나타나는 문제 중 상당수는 실제 상황을 가정해 한 번만 훈련을 해봐도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주요 시설물에 대해선 상시적인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서울대 기숙사에서 일어난 화재는 화재 대피훈련으로 학생들이 소화기 위치와 사용 방법 등을 숙지하고 있었던 덕에 초기에 진화될 수 있었다.
이상화·장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