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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재탄생: 한국 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축 전시(12월 26일까지)

중앙일보

입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소의 재탄생` 전시 공간. 사진 윤준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청(1977년)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총독부.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옛 명동성모병원(현 가톨릭회관) 사진 윤준환.


자고 일어나면 옛 건물들이, 오밀조밀했던 골목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커다란 빌딩 하나가 그 자리에 우뚝 선다. 사라진 건 옛 건물만이 아니다. 그 건물,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비현실처럼 여겨질 정도로 기억조차 흐릿해진다.

지난달 23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소의 재탄생: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전시는 규모는 작지만 밀도 높은 전시 콘텐트로 눈길을 모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사단법인 도코모모코리아(한국근대건축보존회·회장 김태우)와 공동기획한 것으로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쉼 없이 변화해온 우리 근대건축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라진 기억' '풍경의 재현' '주체의 귀환' '권력의 이양''연결될 미래'등 5개 주제로 구성을 나누고, 각 섹션에서는 당시 엽서·신문·영상 등 대중매체 속 자료와 함께 미공개 건축 도면, 지도, 스케치 등 건축 전문 자료를 풍부하게 보여준다.

'사라진 기억'은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사라진 건물들을 재조명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태생의 불손함 때문에 정치적으로 강제 퇴출됐다면, 화신백화점은 더 이상 기능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사라진 경우다. 국도극장, 스카라극장 역시 시대 변화에 따라 경제적인 가치가 더는 없다는 이유로 사라졌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조선총독부 배치 평편도, 국도·스카라 극장에 대한 옛날 신문 기사 등은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흔적 없이 사라진 건물이 있다면 숱한 어려움 끝에 소멸 위기를 넘기고 과거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건축물도 있다. '문화역사서울 284'로 재탄생한 옛 경성역(1925·1947), 일민미술관으로 살아남은 옛 동아일보 사옥(1926), 현재 명동예술극장으로 옛 흔적을 간직한 명치좌(1934·타마타 지즈지 설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새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대법원(1928) 등이다.

'주체의 귀환'은 국내 중견 건축가들의 손길로 과거 건축물이 생명력을 갖게 된 사례를 소개한다. 최근 김중업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옛 유유산업 건물(1959·김중업 설계), 서울 컨트리 클럽하우스(1968·나상진 설계)로 태어났다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거쳐 다시 태어난 어린이대공원 꿈마루(2009·조성룡 설계), 중앙대 도서관(옛 우남도서관·1959), 선유정수장으로 기능하다가 지금 사랑받는 공원을 새 삶을 누리고 있는 선유도 공원(정영선·조성룡 설계) 등이다.

이밖에 '권력의 이양'에선 경성의학 전문학교 부속의원 외래진료소(1929), 국군기무사령부 본관(1971)등 권력 집단의 유지나 지원을 위해 쓰였다가 대중의 품으로 돌아온 국립현대미술관(민현준 설계)의 변천사도 엿볼 수 있다.

'연결될 미래'는 현재 그 활용이 '과제'로 남아 있는 건축물을 조명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불량지구 개발이라는 논리에 의해 도시정비를 위해 도입된 최초의 주상복합 건축 '세운상가'가 대표적 예다. 삼일빌딩(1971·김중업 설계)와 명동 가톨릭회관(옛 명동 성모병원·김정수 설계·1961)등도 있다.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학예사는 "근대건축의 단편을 시간과 사건의 얼개로 구성해 20여 점의 건축물과 200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총동원했다"며 "이번 전시가 좀더 많은 사람에게 건축이 갖고 있는 '시간성'의 가치를 일깨우고 근대건축물 보존 및 활용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열리며 기간 중 오전 11시, 오후 2·4시 3차례에 걸쳐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볼 수 있다. 11일과 18일에는 건축가와 함께 하는 현장 답사 프로그램도 열린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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