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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남자들 인천 깜짝 방문 … 남북관계 새 국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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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01면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북한 선수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가운데)과 최용해 노동당 비서(오른쪽). 이들과 나란히 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AP=뉴시스]

북한 권력서열 2위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용해·김양건 비서를 포함한 최고위급 대표단 11명이 4일 전격 방한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만나 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이르면 이달 말 재개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지난 2월 열렸던 제1차 고위급 회담 이래 약 9개월 만에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 현안을 논의하게 됐다. 북측은 또 남북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혀 남북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서열 2위 황병서, 최용해·김양건과 동행 … 이달 말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

이날 인천의 한식당 영빈관에서 오찬을 겸해 열린 회담에서 북측은 “2차 고위급 회담을 남측이 원하는 시기인 10월 말~11월 초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공개했다. 이어 “2차 회담 대표단은 (남측 김규현 국가안보실 차장과 북측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각각 수석대표를 맡았던) 1차 회담 때와 비슷한 구성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남북이 모든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친서는 없었으나 모든 현안에 대해 협의하자는 그 자체가 메시지”라고 말했다.

또 북측은 “2차 회담이라고 한 건 앞으로 남북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라며 대화의지를 보였다고 통일부 관계자는 전했다. 이어 “(2차) 고위급 접촉 개최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실무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정종욱 부위원장은 “북한은 자금난과 중국의 압박 때문에 남측과 대화를 재개할 필요성이 컸을 것”이라며 “정부도 (5·24 해제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해 둔 만큼 고위급 대화가 재개되면 남북 관계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정은이) 서열 2위인 황병서를 보낸 건 의미가 크다. 2000년 김정일이 당시 서열 2위였던 조명록 차수를 미국에 보낸 직후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성사되고, 북·미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그가 들고 왔을 비공개 메시지에 북한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북측 대표단의 만남은 불발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가 있었지만 북측이 이번엔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왔기 때문에 시간 관계상 청와대 방문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회담에서 남측은 “박 대통령을 예방할 뜻이 있다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으나 북측은 “시간상 이번엔 어렵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서해 직항로를 거쳐 오전 10시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어 오전 11시20분 인천 송도 오크우드호텔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티타임을 한 뒤 오후 1시50분부터 1시간50분간 김 실장, 류 장관, 김규현 차장 등 8명과 오찬 회담을 했다. 이들은 오후 3시50분쯤 아시안게임 선수촌을 찾아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오후 6시쯤 인천 주경기장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약 15분간 환담한 뒤 폐회식에 참석하고 오후 10시쯤 전용기 편으로 돌아갔다.

이날 회동에서 5·24 제재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 사안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그러나 전날 북측의 전격적인 통보로 성사된 이날 회담은 경색을 거듭해 온 남북 관계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박 대통령이 북측 대표단을 만날 용의를 보였다는 점도 북측에 관계 개선 시그널이 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은 “북한이 우리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인 건 긍정적이나 핵 문제 논의나 천안함 폭침 사과는 거부하고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 물고 늘어지거나 경제 지원만 요구하면 남북 대화는 진전을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측 대표단은 폐막식 직후 경기장 내 사무실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 실장, 류 장관 등을 다시 7분간 만난 뒤 밤 10시25분 전용기 편으로 돌아갔다.

황 총정치국장은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가는데 성과가 많다”며 “소통을 좀 더 잘하고,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 가자”고 제안했다.

한편 일각에선 북한 권력서열 2~4위가 동시에 평양을 비우고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표단 방한엔 북한 권력 지형과 관련해 모종의 변화가 담겨 있지 않느냐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관계기사 3~5p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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