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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 '조선의 왕실과 외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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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실과 외척/박영규 지음, 김영사,1만3천9백원

공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공(子貢)에게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뿐이다(一以貫之)"라고 말했다.

5백18년 조선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려 할 때 공자의 이 말에서 암시를 구할 수도 있다.

제1대 태조 이성계부터 제27대 순종까지 사건과 인물이 교차한 조선역사를 일이관지하는 방법의 하나가 조선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집단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경우 왕실과 외척 이상의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이 책 '조선의 왕실과 외척'의 시도는 가치가 있다. 즉 27명 역대 왕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서자.옹주.서녀.후궁.사돈.부마에 이르는 가계도(家系圖)를 완성해낸 것이다.

이 작업에 따라 당시의 왕실 분위기와 의식주는 물론 그들의 사생활.혼인.서열 등까지 함께 드러난 것은 그의 공이다.

문제는 있다. 조선은 국왕 외에 모든 종친의 정사 참여가 금지된 까닭에 왕실의 실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왕조 내내 경계대상이었던 외척은 말할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열성왕비세보' 등을 토대로 작업을 했고, 심지어 규장각과 장서각을 오가며 필름을 뒤지고, 때로는 "사람 이름 하나를 찾기 위해 하루를 꼬박 필름을 살피기도 했다"는 것은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 일이다.

듣자하니 이 작업 중에 과로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는 말도 들리는 그는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다.

본래 그 이전에는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인데,'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한권 때문에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며 건져낸 호칭이 '역사대중화의 기수'였다.

따라서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이 조선왕조의 공개된 파일의 한 권짜리 집대성이라면 이 책은 조선왕조 비()파일의 첫 집대성인 셈이다.

이 책의 1부 '왕실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에서 국왕 내외와 후궁, 왕자와 공주, 옹주와 부마, 외척 등에 관한 핵심 사항이 흥미롭게 압축된 후 2부 '역대 왕들의 가계와 외척'이란 연대기로 넘어가는 입체적 구성이란 점도 다르다.

1, 2부를 통털어 생생한 일화와 저자의 독특한 해석이 다수 실려 있는데, 1부에서는 태종이 궁녀에게서 난 옹주를 춘천부사를 지낸 이속에게 시집보내려다 거절당한 후 간택령이 제도화됐다는 일화 등이 수록돼 있다.

2부에서는 일개 노비가 태종의 부마를 이용해 역모를 획책한 일화나, 명성황후의 혈족들이 모두 비명횡사했다는 일화, 동성 간의 결혼은 금지했지만 모계 근친은 문제되지 않았다는 일화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세종은 시아버지로서는 특히 깐깐한 편이서 세자빈을 두 번씩이나 내쫓아내는 결과를 낳았다는 정보도 흥미롭다.

또 남이의 죽음은 예종의 심한 콤플렉스의 결과라는 해석, 정조의 최대 라이벌은 여왕을 꿈꿨던 화완옹주였다는 해석 등도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역사 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재미있는 해석이다.

국왕의 묘호 중 개국이나 많은 업적을 남긴 임금에게 붙였던 조(祖)가 '정통성 없는 왕'이나 '방계가 왕위를 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붙였다'는 해석 등 이견의 여지가 있는 해석도 물론 존재한다.

이덕일<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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