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 10전 무패 … '축구 이순신' 이광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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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표팀 주장 장현수(오른쪽 둘째)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 일본전에서 후반 43분 페널티킥 결승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과 함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주호·김진수·김민혁·장현수·손준호 선수. [인천 로이터=뉴스1]

한·일전에서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광종(50)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은 이런 ‘극일(克日)의 부담감’을 지혜롭게 헤쳐나온 지도자다.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연령대의 대표팀을 이끌며 9차례 한·일전을 무패(7승2무)로 장식했다. 축구인들은 일본에 유독 강한 이 감독에 대해 “일본 축구계가 이순신 장군만큼이나 두려워하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한·일전은 연습경기조차 져 본 적이 없다”던 이 감독이 통산 10번째 대결에서도 활짝 웃었다. 한국은 29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일본과의 8강전에서 후반 43분 주장 장현수(23·광저우 부리)의 페널티킥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대회 우승팀 일본을 꺾고 금메달 희망을 높였다. 아시안게임 한·일전 전적도 6승1패로 압도했다.

 홍콩과의 16강전(3-0승)과 흐름이 비슷했다. 한국은 21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을 맞아 주도권을 장악하고도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전반 12분 임창우(22·대전)의 헤딩 슈팅과 전반 28분 이용재(23·V바렌 나가사키)의 터닝 슈팅, 후반 15분 이종호(23·전남)의 슈팅이 간발의 차로 골대를 외면했다.

이광종 감독은 28일 8강전 승리로 한·일전 통산 10전 무패(8승 2무)를 기록했다. [인천=양광삼 기자]

 우리 선수들이 고전한 배경에는 ‘부담감’이 있었다. 이 감독은 엔트리 20명 모두를 병역 미필자들로 뽑았지만, 병역 혜택은 당근이면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일본전을 앞두고 대표팀이 실시한 비공개 승부차기 연습에서 선수들의 성공률은 눈에 띄게 낮았다. ‘나 하나의 실수가 금메달은 물론 팀 전체의 병역 혜택까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제자들의 마음을 읽은 이 감독은 경기 전 미팅에서 “90분 이내에 승리를 확정 지으라”고 독려했다. 이 감독은 전반 막판 윙어 김영욱(23·전남)이 다치자 곧장 스트라이커 이종호를 투입하며 공격에 무게를 실었다.

 후반 41분 상대 위험지역에서 공중볼을 다투던 이종호가 오시마 료타(21)의 파울에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장현수가 오른발로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4만3000여 팬들의 함성으로 경기장이 떠나갈 듯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위한 노력도 있었다. 일본 J-리그 출신으로 A대표팀까지 성장한 박주호(27·마인츠)와 김진수(22·호펜하임)·장현수와 현역 J-리거 김민혁(22)·최성근(23·이상 사간 도스)·이주영(23·몬테디오 야마가타)이 일본 선수들의 특징과 장단점을 동료들과 공유했다. 김기동(43) 대표팀 코치는 “우리 선수들이 J-리그 에서 체득한 정보들이 전술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한·일전 승리와 함께 이광종 감독의 지도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K리그에서 유공과 수원을 거치며 10년간 266경기(36골)를 뛰었지만 선수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진짜 전성기는 지도자로 거듭난 이후 찾아왔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 새 출발한 2000년 이후 17세 이하 월드컵 8강(2009), 20세 이하 월드컵 16강(2011) 및 8강(2013년)을 이끌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유망주 발굴·육성 전문가다. 한·일전에서의 좋은 성적도 선수들의 특징과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술 구사력 덕분이라는 평가다. 이 감독은 “한·일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두세 명의 선수가 평소보다 긴장했다. 그게 전체적인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4강전 상대인 태국도 수비 위주의 전술이 예상된다. 문전에서 침착성을 좀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연장 접전 끝에 아랍에미리트에 1-0으로 승리해 24년 만에 4강에 올랐다. 태국과 이라크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를 2-0과 3-0으로 완파했다. 한국은 30일 오후 8시 태국과 결승행을 다툰다.

인천=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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