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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人 과학in]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이 부러운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4호 06면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의 스케치스 오브 사이언스 전시 모습.

얼마 전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대학(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Graduate University)에서 열린 ‘스케치 오브 사이언스(Sketches of Science)’란 전시회에 다녀왔다. 이름 그대로 이 전시회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행사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커다란 전지에 크레용으로 연구 성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스케치했다. 전문 화가가 아닌 세계 최고 과학자들의 그림에서 마치 어린아이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귀여움과 깜찍함, 때론 그로테스크한 추상화 같은 느낌을 받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노벨상 수상식에 연미복을 입고 등장했던 근엄한 모습과는 달리 사진 속 수상자들은 평상복 차림으로 매우 유쾌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그림을 거꾸로 들거나, 입으로 물고 공처럼 차는가 하면 치마처럼 두르기도 한다. 마치 옆집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과 아이들 같은 천진난만함이 넘쳐난다. 사진 속 과학자들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 외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유쾌한 분위기는 전시회 개막식에서도 한껏 느껴졌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기꺼이 행사에 참석한 1924년생 토르첸 위젤(1981년 생리의학상 수상자), 1930년생 제롬 프리드먼(1990년 물리학상 수상자), 1943년생 티머시 헌트(2001년 생리의학상 수상자) 등은 특정한 형식도 없이 스탠딩으로 진행된 인사말에서 특유의 농담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특히 티머시 헌트가 본인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보다 연구결과가 완성되었을 때 더 기쁨이 컸다는 말에서는 순수한 과학자로서의 열정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때론 경외감마저 드는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이렇게 친근한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무엇보다 사진 속 수상자의 모습에서 과학은 우리의 일상과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실 이런 유명 과학자의 인물 사진이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찍은 사진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72세 생일 파티에서 찍은 이 사진에 대해 일부에서는 권위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그 사진을 보면서 바로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개성이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 모형을 천장 끝까지 닿을 정도로 만들어 놓고 토론하는 사진 또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물론 단 한 장의 그림과 육성 녹음으로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위대한 업적을 일부라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왜 노벨박물관과 린다우 재단은 이런 전시회를 기획했을까. 과학기술의 저변을 넓히고 청소년과 학생 등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 과학기술에 대한 영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일반인에게 과학기술이란 재미없고 지루한 분야인 데다 언론을 통해 일반인이 대하는 과학자의 모습도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학기술을 노벨상 수상 과학자의 꾸밈없는 소탈한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과학과 과학자라는 울타리와 권위를 무너뜨린 시도인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의 위대한 과학자도 농담을 하고 장난도 치는 평범한 인간임을 알려 일반인, 청소년과 과학의 거리감을 좁힌 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그간 우리는 일반인과 학생들 간에 과학기술 지식의 전달에만 익숙해져 있을 뿐 그림과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매체를 통해 과학기술을 문화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등한시해 왔다. 과학과 예술의 산뜻한 만남인 ‘스케치 오브 사이언스’가 오는 10월 한국을 찾는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주관으로 과천과학관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에 누구든 찾아와 과학과 함께하는 가을 산책을 한껏 즐기길 바란다.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KISTEP)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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