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구하기 아우성 … 1개 필지에 329개사 신청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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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0대 건설사를 포함해 주택면허를 가진 전국의 주택건설업체가 대부분 신청한 것 같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한 중견 주택건설업체 임원은 23일 마감한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 아파트용지(B10블록) 분양 신청 결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1개 필지 분양에 329개 업체가 신청한 것이다. 그는 “주택건설업체가 아파트용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죽기 살기로 덤벼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공공택지 개발사업을 폐기(9·1 부동산 대책)키로 하면서 주택건설업체와 부동산개발회사(시행사)들의 ‘먹거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업체마다 공동주택(아파트)용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쓸만한 땅은 경쟁률이 보통 수백대 1에 이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3일 신청 접수를 마감한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의 아파트용지 2개 필지는 경쟁률이 각각 329대 1(B10블록), 108대 1(B2블록)에 달했다. 아파트용지 2개 필지 분양에 전국의 주택건설업체와 시행사 437곳이 몰린 것이다.

 앞선 18일 LH가 입찰 신청을 받은 시흥시 목감지구 아파트용지(A-7블록)는 경쟁률이 406대 1이었다. 올해 분양된 아파트용지 경쟁률로는 가장 높다. LH 광명시흥사업본부 관계자는 “9·1 대책 이후 업체들의 문의가 많았지만 이 정도로 관심이 높을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아파트용지 확보 경쟁에 나서는 건 정부가 9·1 대책을 통해 부동산 규제를 대거 완화한 영향이다. 이 덕에 모처럼 분양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금성백조주택이 9·1 대책 직후 세종시에서 분양한 아파트는 청약 1순위에서 평균 30대 1, 최고 16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65대 1은 세종시 아파트 청약 경쟁률로는 신기록(종전 141대 1)이다.

한 중견 시행사의 대표는 “모처럼 장(아파트 분양)이 섰는데 사업용지가 없어 놀고 있다”며 “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택지개발사업까지 중단키로 하면서 업체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공공택지 아파트용지는 그동안 주택건설업체들의 주요 ‘먹거리’였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택지 수주 경쟁에서 밀린 중견 업체들이 공공택지를 통해 성장해 왔다.

한 중견 업체 관계자는 “민간택지보다 수익은 적지만 어느 정도 분양성이 있고 인·허가가 빠른 게 장점”이라며 “기술력이나 사업 노하우가 없는 중소 업체도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중견 업체들이 ‘페이퍼컴퍼니’(이름만 있는 회사) 계열사를 만들어 공공택지 아파트용지 확보에 나선 것도 그래서다. 입찰이 아닌 추첨으로 분양하는 용지의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엔 같은 이유로 삼성물산·대우건설 등 대형 업체까지 공공택지 용지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택지개발사업을 중단하면 민간택지 경험이 없는 중소 업체들은 먹거리가 없어 고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분간 업체들의 택지 확보 경쟁은 더 치열해 질 전망이다. 중견 업체인 우미건설의 이춘석 팀장은 “이미 개발 확정된 공공택지 내 용지는 최대한 확보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이와 함께 도시개발사업이나 상가, 오피스텔 등 새로운 먹거리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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