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누구냐고요? 시민, 납세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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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둘 중 한 사람은 미치고 팔짝 뛸 심정일 것이다. 한쪽에선 국회의원이라고 유세를 떨며 폭언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서는 막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 ‘다른 쪽’이 자존심 꺾고 사과했다(뭘 잘못했다는 것인지가 명확지는 않다). 상대는 진정한 사과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영국 하원의원 앤드루 미첼과 경찰관 토비 로랜드의 스토리다. 사건은 2012년 9월 19일에 일어났다. 집권여당(보수당) 원내대표인 미첼은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 입구에서 로랜드와 시비가 붙었다. 자전거 타고 그대로 지나갈 수 있도록 정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는 미첼에게 자전거에서 내려 그 옆의 쪽문으로 나가라고 로랜드가 지시한 게 발단이 됐다. 영국에는 자전거 타는 의원이 많다. 의사당과 의원회관에 의원용 주차장이 없다(자전거 타고 다니는 한국 의원에게는 숭례문이라도 열어주고 싶다).

 로랜드는 “미첼이 ‘주제를 파악해라. 세상은 너희들이 지배하는 게 아니야, 이 XX(F로 시작하는 욕설) 평민(平民·plebs)아!’라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이른바 ‘플렙(pleb)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미첼은 경찰관을 존중하지 않은 태도에 대해 공개 사과하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총리·장관도 경찰의 공무적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게 그 나라의 상식이다.

 미첼은 ‘플렙’이란 단어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고 버텼다.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가 진행됐고, 신분을 감춘 채 “주변 시민들도 미첼의 발언을 들었다”고 언론에 거짓 제보를 한 동료 경찰관이 징역 1년형을 선고받는 등 파장이 뒤따랐다. 현장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보면 진실은 미첼과 로랜드 두 사람만 알 수 있다. 로랜드는 지난 4월 미첼을 상대로 20만 파운드(3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제 우리나라 얘기다. 세월호 유가족 폭행 사건 목격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현 의원이 대리기사에게 “너 어디가 … 소속(대리운전회사)이 어디야 … 명함줘봐”라고 말한 게 사달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갑질’(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의 표현) 지적의 근거다. 김 의원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반말은 안 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의 질문에 대신 답을 해주면 이렇다. 대리기사 이씨는 돈 벌러 다른 손님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시민이자, 의원 세비 대주는 납세자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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