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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는 고은맘] 누구를 위한 문화센터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철없던 시절엔 그랬습니다. 평일 오전에 유모차 끌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게 꿈이라고요. 그게 진정한 ‘부의 상징’인 줄 알았거든요. 돈도, 시간도 있는.

철 든 지금은 알았습니다. 그건 가끔 나(애 엄마)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라는 걸요. 육아의 숨통을 틔우는.

그렇지만, 숨 좀 쉬고 싶다고 해도 백화점에 매일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탄생(?)한 게 문화센터인가 봅니다. 백화점 문화센터엔 누가 다니나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이 다니는 거였습니다.

사람 구실(?) 못하는 고은양이 정기적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습니다(세상에는 많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게 없어서ㅠ).

그런데, 고은양을 위해서 문화센터에 간다지만 실은 엄마 때문에 갑니다. 문화센터에 가면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만나니 위안이 됩니다. 뭐랄까. 육아가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문화센터에서 처음 들었던 수업은 ‘베이비 마사지’였습니다. 수업 효과는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가고는 싶은데 마땅히 갈 곳은 없고, 그래서 찾은 곳이 문화센터였습니다. 고은양이 들을 만한 게 그것밖에 없어서 신청한 수업이었습니다.

수업은 가관입니다. 선생님의 설명과는 아랑곳없이 다른 짓을 하는 아기들. 마사지를 하려면 아기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다들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어디론가 가려합니다. 그렇게 애를 잡아다 놓으면 아기가 무서운지 귀찮은지 짜증을 내며 울고. 분명히 ‘베이비’ 마사지인데 수업을 듣고 나면 제가 마사지를 받은 듯, 온몸이 뻐근합니다.

다음 학기 신청한 수업은 ‘오감발달’. 아기들이 오감을 느끼게 도와줘 두뇌를 좋아지게 한다는데. 이 수업은 엄마가 배로 힘듭니다. LTE급 속도로 기어다니는 고은양을 제자리에 잡아둬야 하기 때문에 진이 빠집니다. 또 아기들이 다 그렇겠지만, 걸신이 들렸는지 고은양은 유독 뭐든지 먹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모두 입으로 가져가 엄마를 놀라게 합니다. 종이를 먹는 건 다반사. 입을 오물거리고 있으면 종이를 먹고 있는 겁니다. 그걸 억지로 빼면 떼쓰고. 한 번은 놀라고 준 작은 구슬 같은 걸 입 속에 넣어 심장이 쿵한 적도 있습니다. 오감발달. 이름은 그럴 듯한데 뭘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고은양이랑 즐겁게 노는 40분간의 수업입니다.

최근에는 수업을 두 개나 듣습니다. 월요일에 듣는 ‘놀이친구 노리야’ 라는 수업은 고은양이 좀 커서 그런지 수업을 아주 적극적으로 듣습니다. 선생님 말을 귀기울여 듣는 것도 같고, 뭔가 놀라고 준 도구를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유자재로 이용해 놀기도 하고요. 큰 아기들이 모여서 그런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다들 난리납니다. 한 아기가 기어서 선생님 앞으로 돌진하면 다른 아기도 돌진하고. 놀라고 각자 장난감을 나눠주면 자기 것은 저만치 두고 친구 걸 뺏기도 하고.

그리고 일요일에 듣는 ‘유리드믹스’는 남편이 혼자 들어갑니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가 정서 발달에 좋다, 고 우겨서 남편을 들여보냅니다. 아빠 혼자 오는 아기는 자기밖에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고은양을 잘 데리고 다닙니다. 수업이 어떻느냐고 물어보니 일요일이라 엄마 아빠가 같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빠들이 무슨 전시회 출품용 사진을 찍는 것 마냥 대포 느낌의 DSLR을 들고 와선 사진을 찍어댄답니다. 한 번은 선생님이 “아버님들 사진은 좀 적당히 찍으시고...” 라며 촬영을 자제시키기도 했다네요. 고은양은 고작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데 말이죠(그래도 남편은 고은양이 제일 예쁘다고 자랑하네요).

지금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관찰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역시 엄마가 극성이라는 것.

다들 엄마들이 수업에 열중하면서 아기들 잡기에 여념이 없는데 좀 다른 태도를 보이는 분이 있었습니다. 아마 엄마가 백화점 근처 직장에서 일하는 것 같은데 복직을 한 모양입니다. 아기를 봐 주는 듯한 젊은 할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역시 극성스런(?) 엄마들과 달리 그 할머니야 아기가 배우건 말건(사실 뭘 얼마나 배우겠습니까) 아기와 시간만 보내다 가면 되니 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으시더군요. 엄마들은 아기가 울거나 귀찮아 해도 아기를 잡아채 다시 진도를 따라가려고 하는데, 그 할머니는 아기가 일단 좀 귀찮다 싶은 조짐만 보여도 수업과는 상관없이 아기를 안아 올려 달랩니다. 아기가 구석으로 가서 자기만의 놀이에 빠져들면 그냥 놀게 놔두고요. 엄마들은 한 자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는 전투적인 자세라면, 아기를 봐 주는 분은 그냥 시간만 보내다 가자는 여유만만 자세입니다. 물론 저도 싫다고 꿈틀거리는 고은양을 팔로 꾹 눌러 수업을 받게 했습니다(그렇게 받은 마사지 수업, 지금은 다 까먹었습니다).

그리고, 수업마다 여자 아기가 많습니다.

여자 아기가 3분의 2 정도 됩니다(노리야 수업만 예외입니다. 여긴 반반 정도). 여자 아기들 엄마가 더 극성인 건지, 아니면 여자 아기라서 어렸을 때부터 이런 백화점 혹은 문화와 친해지라고 엄마들이 데려오는 건지. 이렇게 극성인 여자애들 엄마 때문인지 아들 엄마들 사이에서 남녀공학이 인기가 없다고 하나 봅니다.

문화센터의 백미는 수업 끝나고 하는 식품관 쇼핑. 참 볼 게 많습니다. 눈으로‘만’ 봐도 행복하지만, 행복의 절정은 맛 봐야죠. 그렇게 정기적으로 문화센터를 다니다 보니 ‘신에게는 아직 열두근의 지방이 남았’나 봅니다.

ps. 9월부터 시간제 보육시설을 확충한다더니 정말입니다. 이제 집 근처에 시간제 보육시설이 생겨 고은양을 맡길 수 있게 됐습니다. 아기 엄마들은 ‘아이사랑포털’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이용해 보세요.

<사진설명>
1) 문화센터 수업에서 할로윈 분위기. 꼬마 마녀 고은양
2) 오감으로 밀가루 체험. 하얗게 범벅된 꼬마 셰프 고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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