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50명 시골 초등교, 그 중 48명이 한자 자격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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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두서초등학교 학생들이 한자 자격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두서초교]

전교생 대부분이 한자 자격증을 딴 초등학교가 있다. 수업을 마친 뒤 1~2시간씩 한자 교재를 펴고 선생님이 칠판에 쓴 한자를 열심히 따라 읽은 결과다. 한자수업은 일주일에 하루밖에 없지만 학생들은 의욕이 넘친다. 집에서는 신문 곳곳에 쓰인 한자를 읽으려고 애쓴다. 전교생이 50명밖에 안되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22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두서초등학교 학습실. 학생들은 윤순영(47) 한자교사가 칠판에 쓴 한자를 부지런히 따라 읽었다. 수업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됐다. 예를 들면 ‘활용(活用)’이라는 단어를 먼저 한자로 쓰고 각 글자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는 식이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끝에 지난 1년간 50명 중 48명이 4~8급 한자 자격증을 땄다. 윤 교사는 “열정 덕분에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단시간에 자격증을 따게 됐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한자 자격증 열풍은 농촌마을의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냈다. 학교 주변은 논밭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 학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원은 단 하나도 없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학생 숫자는 울산에서 셋째로 적다. 덕분에 도시의 학생들처럼 경쟁에 내몰리진 않지만 학업에 대한 성취감은 다소 낮을 수밖에 없었다.

 고민에 빠진 교사들은 “전교생이 한자 자격증을 갖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암기력만 있으면 초등학생이라도 어렵잖게 딸 수 있어서다. 자격증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성취감은 학교 수업이 주기 힘든 ‘당근’이었다. 후원자도 나타났다.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울산도시공사가 학생들 시험 응시료와 교재비를 대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본격적인 한자 열풍이 시작됐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예상보다 컸다. 스스로 노력해 거머쥔 결과이기 때문이다. 박예원(4학년)양은 “한자를 공부한 덕분에 집에서 신문을 읽으며 모르는 단어는 찾아 보는 습관이 생겼다”며 “글을 읽는 게 재밌어졌다”고 했다. 최경태(53) 교장은 “우리말의 절반 이상이 한자어인데,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한자를 배우면 언어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게 된다”며 “교사들이 억지로 시킨 게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고 딴 자격증인 만큼 앞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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