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평양 진의파악에 주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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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베이징(北京)에서 23일 열린 미국.북한.중국 3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종착점을 향한 '긴 여정의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정책자문관 출신으로 북한과 협상 경험이 풍부한 미첼 라이스 교수(윌리엄 앤 메리 대학)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이끄는 미국대표단이 3자회담 과정에서 적잖이 '애를 먹을'것으로 전망했다.

1995~99년 북한과 경수로 부속협정 협상에 참여한 라이스 교수는 회담이 시작되면 북측 이근 대표가 자신의 카드는 감춘 채 켈리 대표의 입장을 집요하게 떠보는 협상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북측은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켈리를 상대로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겠다"는 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라이스 교수는 "북한의 협상대표는 절대로 손해를 보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3자회담을 협상보다 핵 보유 문제를 둘러싼 평양의 진의 파악용 시험대로 활용할 것이라고 로버트 아인혼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워싱턴은 그동안 북한 핵개발에 대해 크게 두가지 해석을 해왔다.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대북 협상파들은 북한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핵개발을 한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미국이 체제보장과 경제제재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국방부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북한이 어떤 경우에도 핵개발을 강행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따라서 켈리 대표의 1차 과제는 핵에 대한 평양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아인혼 연구원은 강조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미 미사일 협상 대표를 맡았던 그는 "이번 회담의 최대 목적은 협상이 아니라 북한이 진정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불가침 조약 같은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지원을 원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보수계의 시각을 반영하는 발비나 황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은 북한이 3자회담을 '시간벌기'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 미 대선 정국을 북한이 활용하려고 했던 것처럼 이라크 전쟁이 막 끝난 지금보다는 내년 하반기에 전개될 미 대선 국면이 북한에게는 협상하기 좋은 시점이라는 것이다. 황 연구원은 "따라서 북한은 시간을 벌려 할 것이고, 회담이 1년 이상 질질 끌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경제전문가인 존 에드워드는 22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 핵문제로 올 1분기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전년보다 48% 줄어들고, 원화가치는 5% 이상 하락했다"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오랜 협상은 동북아에 전쟁 이상의 부정적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런던=김종혁.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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