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와 악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주변에 순사한 부부의 얘기가 있었다. 남편을 잃은 20대의 아내가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육구의 노부가 병든 남편과 함께 목숨을 끊은 일이 그것이다.
부부사이는 촌수를 가릴수조차 없는 무촌으로 동체나 다름없다. 순사가 가능한 것도 그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사랑할 때의 일이다. 부부는 사랑하는한 이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분신이다. 그러나 양처가 악처로 바뀌는 일은 실로 무엇으로도 설명할수 없는 극적인 상황이다. 삽시간에 부부는 그어떤 사이보다도 두렵고 가증한관계로 돌변하는 것이다.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너무 미워한다』는 감상적인 역설도 있을수 있는것이 부부다.
요즘 일본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나까」(전중각형)전수상의 비서얘기는 그점에서 인간정의 한교훈으로 삼아야한다.
벌써 5년동안 「록히드」수뢰사건으로 법정에 서고 있는「다나까」는 유죄냐 무죄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순간에 한 비협관의 전처에 의해 결정적인 꼬리를 밟히게 되었다.
화제의 비협관은 벌써 마누라를 세번씩이나 바꿀 정도로 사생활이 떳떳치 못했다.
그가운데 이혼당한 두번째 부인이 바로 남편과의 시절에 있었던 일을 폭로한 것이다.
「다나까」 전수상이 뇌물로 받았다는 5억엔의 단서가 그것이다.
이것은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할 때 오히려 그 부인에 의해『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비고로서 사내다운 일』이라고 충고까지 했던 일이었다. 또 그 증거서류를 불태운 것도 다른 사람아닌 그 부인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동안 이혼한 사이가 되었고 남편은 그 부인을 증오해 이혼의 뒷마무리도 원만히 짓지 않았다.
남편의 모든 일, 이를테면 형사적 범죄까지도 사심없이 도왔던 바로 그부인의 사랑이 이젠 승악로 불타게된 것이다. 「다나까」는 비협관에게 이혼을 극구 만류까지 했었다고한다. 그러나 비협관은 끝내 이혼을 하고말았다.
지금 누구의「범죄」협의를 방조해야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서도 꼭 마찬가지다. 거대한 제방이 개미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경우를 이와 비유할수도 있다. 「다나까」의 정치적파국이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가 망하는 정반대의 경우도 생각할수있는 것이다.
남의 나라 정치문제는 알바아니지만, 한 사람의 사생활과 인문사를 두고 볼때 자연인으로 느끼는 감회는 실로 미묘하고 착잡하기까지 하다. 선인의 『수신제가후천하』(「대학」)란 말은 천년의 진리가 아니라, 인류와 함께하는 영원한 진리인 것같다.
공·사를 분별할 것없이 그것은 삶의 질서이며 인문의 도리인 것이다.
공인과 그주변의 사생활이 바르고 깨끗해야한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공연히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사랑의 증오만큼 억압할 수없는 것은 없다』는 말은 기원전 로마시인「프로페르티우스」가 한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