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일깨워준 「1원」의 소중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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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봄에 심은 덩굴장미 한포기는 산호초의 여린잎이 바싹 타버린 삼복의 더위를 잘도 견디고 잘도 컸다.
새순이 세개씩이나 솟았고 덩굴도 많이 자라 4층 아파트 베란다에 제법 보기 좋게 어울렸다. 항상 무미건조한 생활이라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딸아이 학교 보내고 청소는 비질을 깨끗이 해야 된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던 여학교때 선생님 말씀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말끔히 닦아 놓은 후 이번엔 분무기로 꽃·이파리들의 먼지를 씻어주며 조용히 장미와 마주 앉았는데 올해 제 누나 학교 간후론 심심하다고 입버릇처럼 외던 아이가 느닷없이 『엄마!』하곤 꽥 소리지른다.
살이 포동포동한 두꺼비 같은 두손으르 엄마 얼굴을 감싸쥔채 『엄마! 일원이 소중하대는데-. 일원 가지고 천원도 만들고 일원 가지고 백만원도 만들고-.』
내 얼굴에서 무엇이라도 찾아 내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나는 적이 당황했다.
아이의 손에는 일원짜리 동전 몇닢이 쥐어져 있었다. 청소를 하며 무심코 쓰레기통으로 버린 일원짜리들을 아이는 주워 가지고 온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서글서글한 눈망울이 좋았는데 아이가 이제 여섯살! 시원시원한 성격에 시윈스레 맑고 큰눈이 늘 이 엄마 마음을 위로하고 흡족하게 했는데 오늘따라 그 눈이 더 커졌다.
아이손에 잡힌채로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야 겨우 손을 떼어놓고 『하하, 우리엄마 좋다』 다.
『동빈아, 일원이 귀중하단 얘긴 누구한테 들었니? 아빠가 그러시던?』
『아니!』
『그럼 교회학교에서 배웠니?』
『아니!』
『그럼 누구한테 배웠어?』
아이는 대답을 않고 그냥 해실해실 웃었다. 「수」의 개념을 어릴때부터 가르친다는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평소 나도 은근히 얘기하긴 했지만 이렇듯 확실한 신념으로 엄마를 가르치는덴 정말 놀랍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또한 주춤 내 생활을 되돌아 보게도 한다. 과연 「일원」 에 대한 나의 관념이 어떠했는가? 일원에 대한 대접을 어떻게 했는가? 벽돌 한장이 쌓여져서 큰 빌딩이 되듯 이 일원짜리가 모여 천원도 되고 천만원도 된다.
아이의 말이 진리다.
세금 낼때나 가끔 쓰이는 이 일원짜리 한개로선 별로 통용되지 않는 인플레 현실이라 내 의식속에 거의 일원에 대한 개념이 잠자고 있은게 사실이다. 일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턴 이 일원을 아껴야 겠다. 일원을 귀중히 아껴서 백만원도 저축하고 천만원도 저축하자. 그리하여 이 아이가 장성하거던 베란다의 한포기 외로운 장미 아닌 온 사방을 얽히고설킬 장미덩굴로 단장하자. 장미아치도 하나쯤 만들고 대문쪽엔 작은 연못도 만들까? 마당엔 푸른 잔디로 가꾸고 그 위에 풍성한 우리의 식탁을 차리자. 그리고선 옛날 얘기를 하자. 아이의 일원짜리 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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