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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도박용 '마킹 카드' 판매한 일당 구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기도박용 ‘마킹 카드’를 만들어 도박꾼과 유통 중간상에게 판매한 제조사범이 검찰에 적발됐다. 카드 뒷면에 암호나 숫자 등이 적힌 마킹 카드는 특수 컨텍트렌즈나 안경을 껴야만 보인다.

수원지검 강력부(부장 김옥환)는 정모(62)씨와 신모(52)씨, 이모(47)씨를 마킹 카드를 만들어 특수 콘텍트렌즈와 함께 판매한 혐의(의료기기법 위반)로 구속 기소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에게 마킹 카드를 사들여 유통시키거나 직접 사기 도박을 벌인 송모(42)씨 등 유통사범 6명은 불구속 기소, 달아난 사기도박범 소모(42)씨는 추적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와 신씨 등은 2006년 6월부터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주택가에 적외선 카메라와 프린터 등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차리고 마킹 카드를 제조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정상적인 트럼프 카드를 구입한 뒤 카드 뒷면에 화학약품과 형광물질을 배합한 염료로 암호식 무늬(‘하트’, ‘V’자 등)와 숫자를 표기하는 식이었다. 일부 카드는 아예 뒷면을 앞면과 똑같이 제작했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특수 콘텍트렌즈를 끼면 형광물질로 적힌 무늬와 숫자 등이 뚜렷하게 보였다. 정씨와 신씨는 이 컨텍트렌즈를 다른 업자로부터 사들여 마킹 카드와 세트로 판매했다.

마킹 카드 한 타스(12개)와 특수 콘텍트렌즈 한 조(2개)의 가격은 25~30만원. 일반 카드 한 타스(7만~8만원)보다 3~5배 비샀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1억원 어치 이상을 사들인 전문 유통업자가 많았다. “사기도박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알음알음 소량을 구매한 회사원들도 있었다. '되는 장사'라고 판단해 신씨는 2011년 정씨 공장에서 나와 인근 지역(수원시 권선구)에 따로 공장을 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첩보를 입수한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검찰은 이들의 공장 두 곳을 압수수색해 마킹 카드 제조에 쓰인 트럼프 카드와 특수 혼합잉크, 인쇄기 등 2.5톤 트럭 3대 분량의 증거를 확보했다. 계좌 추적으로 밝혀낸 이들의 판매액은 19억원에 달했다. 그것도 확인 가능한 최근 5년간의 액수다. 적어도 42만 개 이상이 팔린 셈이다.

정씨와 신씨 등이 붙잡히면서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던 사기도박꾼들의 혐의도 드러났다. 마킹 카드 중간판매상이자 사기도박꾼인 소씨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2011년 8월 천안 소재 사무실에서 속칭 ‘바둑이’라는 사기 도박판을 벌였지만 지난 5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번 수사를 통해 신씨로부터 마킹 카드를 구입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돼 수사가 재개됐다.

대전에서 사기도박을 벌인 허모(53)씨도 1심 재판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가 정씨로부터 마킹 카드를 산 게 밝혀졌다. 검찰은 “마킹 카드 전문 제조업자가 아직 전국에 5~6명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특수 콘텍트렌즈 제조업자를 포함해 추가 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 상 마킹카드 제조업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은 마땅치 않다. 구속된 정씨와 신씨 등에 적용된 혐의는 의료기기법 위반이다. 직접 사기도박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기죄를 적용할 수도 없다. 허가를 받지 않은 특수 콘택트렌즈를 판매한 것에 대한 혐의만 물은 셈이다. 의료기기법 위반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기 도박은 사기죄(형법 347조)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수원=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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