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세월호 파행 비판한 박근혜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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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정국의 핵심 쟁점에 대해 언급했다. 진상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갖는 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세월호특별법을 외부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되고, 여야의 2차합의안은 ‘마지막 결단’이며, ‘마비 국회’는 국회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거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해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으며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언급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지켜야 하는 원칙에 맞다. 행정부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은 헌법이 규정하는 사법체계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당연히 수사·기소권의 왜곡이나 남용을 막아야 한다. 특검이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민간조사위가 수사·기소권을 갖겠다는 건 대통령의 지적대로 외부세력의 정치적 의도일 의혹이 짙다. 세월호특별법을 빌미로 야당이 다른 법안의 처리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행정부 수장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위 ‘대통령의 참사 당일 7시간’과 관련해 정치적 인신공격 사태가 벌어져 왔다. 최근 야당의 상임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연애’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검찰조사 결과 ‘대통령과 외부 측근의 밀회’설은 말 그대로 낭설임이 밝혀졌다.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모독, 국가 위상의 추락, 외교관계에 악영향’ 같은 우려를 언급했다. 이는 피해자로서의 항변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할 수 있는 문제 제기이자 경고다.

 대통령의 요청대로 국회는 신속히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국정감사 등 정기국회 일정을 직권으로 정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것이다. 의장은 본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 91개도 주저 없이 표결에 부쳐야 한다. 야당은 당당히 표결에 임해야 한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해서도 여야는 합의한 대로 국회 통과절차를 밟아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입장 발표는 그러나 여러 면에서 문제점도 보여주고 있다. 유가족이 국회·광화문 농성을 시작한 지는 2개월, 여야의 특별법 합의가 나온 지는 한 달이 넘었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국정조사 답변으로 촉발된 ‘7시간’ 문제도 두 달이 넘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다 빨리 입장과 사정을 밝혔다면 혼란은 대폭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았다. 야당이 ‘박영선 탈당’ 사태 등으로 혼란을 겪는 와중에 이런 입장이 나와 대통령이 지나치게 정치적 계산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대통령의 이런 자세는 포용·소통형이 아니라 대결형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물어볼 것이 많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연두회견을 빼고는 회견이 없다. 대통령은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한다. 필요하면 대통령이 국회에 요구하듯, 이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