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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시민의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밝고 명랑한 생활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사회생활의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서 우리는 공동사회의 논리와 질서에 대해 뚜렷한 의식도 부족하거니와 실천의 노력도 결여되어 있음을 본다.
치안본부가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5일부터 보름동안 「질서 지키기 범국민운동」을 펴기로 한 것은 그 현실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공동생활의 논리와 질서의식에 투철하여 자각생활에서 그것이 행동으로 구체화되어있다면 새삼스레 이 같은 운동을 벌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수도 없이 질서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계몽과 실천을 강조하였지만 그 실효를 오늘에까지 거두지 못하고 있다.
특히 78년에 내무부는 정신질서·행동질서·환경질서의 3대 질서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벌인 바도 있었다.
그때 부르짖었던 구호들은 대부분 공동생활에 유용한 덕목이었으나 실제로 그 성과는 거둬지지 않았다.
이번에 또「질서 지키기 범국민운동」을 벌임에 있어서는 그 같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마땅히 선행되어야하며 단순한「운동」의 되풀이는 별무소용일 경우가 많음도 인식하여야겠다.
물론 형식적 운동이나마 되풀이됨으로써 하나의「습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가 무시될 수 없으며 경찰과 학생과 직장인의 공동참여 속에서 점차 질서의 사회화가 확대되리란 희망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운동에서「정신질서」로서 강조된「국가에 대한 충성」「반상회 참여하기」와 같은 강요적이고 비민주적인 덕목들은 오늘엔 마땅히 제거되어야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질서운동」도 과거의 후진적이고 구 시대적인 정치·사회의식에 따른 타율적인 운동으로 시종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식과 시민의식에 기반을 둔 진취적이고 자발적인 모습으로 변모해야 마땅하다는 각성의 요청이다.
식민지시대의 청산과 경제개발의 한 세대를 경과한 오늘의 우리는 선발 개도국의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거니와 앞으로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선진국의 대열에 도약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 가운데 살고있다.
그렇다면 그같은 경제발전에 상응하는 시민의식과 문화정신의 수준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이치이겠다.
선진국의 시민이 갖는 자유와 민주의 신념도 중요하고 권리의식도 투철하여야겠지만 공동사회 속에 사는 성패로서의 준법정신·예양협동의 정신이 또한 철저해야겠다.
그 점에서「행동질서」와 「환경질서」의 생활화를 선진국시대 시민의 기본교양으로서 요구할 만도 하다.
구체적으로 고운말 바른말쓰기 등 예의규범의 준수에서부터 믿을 수 있는 물건을 올바른 값으로 사고 파는 거래질서, 차례로 줄서기, 횡단보도 지키기 등 교통질서의 철저한 준수가 그것이다.
여기에 내 집 앞 쓸기, 휴지 안 버리기 등 환경질서의 정립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질서의 체질화 노력도 없어선 안되겠다.
그것은 우선 두세 사람만 모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차례로 줄설 줄 아는 선진국 국민의 생활습성을 배워 익히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할뿐 아니라, 난장판을 이루며 경기에 지장조차 초래하는 운동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철저한 운동장 출입제한의 강제적 적용시범도 마땅히 있어야겠다.
우리는 이제야말로 공공생활의 규칙을 중시하고 상호신뢰의 관계를 철저히 지켜야할 중대한 시점에 왔다.
나 하나 안 지킨다고 무슨 영향이 있느냐든가, 나만은 안 지켜도 된다는 특권과 예외의식도 용납해선 안 된다.
물론 이번 질서운동에도 전단과 표어를 뿌리는 계몽활동이 있을 것이고, 교통법규 위반에 대한 단속도 계획되고 있다.
이런 계몽과 단속이 필요한 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지만 이와 동시에 학교와 직장과 마을과 매스컴을 통한 다각적 시민의식의 시고, 자발성에 호소하는 교육노력은 끈질기게 지속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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