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심증으로 자백강요…짓밟힌 인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은 6일 검찰이 그 동안 경찰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심문을 계속해온 J모군을 귀가시키도록 지시함으로써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경찰에서는 수사본부를 해체하지 않고 진범이 잡히지도 않은 상태여서 막이 완전히 내렸다고 볼 수는 없겠죠.
-박양 피살사건은 우리 중앙일보가 맨 처음 보도했던 것이지요.
사건이 최초로 보도된 것은 지난달 21일 지방판부터였습니다.
낮1시쯤 서울 삼성동 삼정장여관 근처의 인조석 야적장에서 20대여인의 피살체가 매장된 것이 발견되었죠.
-그래서 이사건의 제1보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20대 여인이 피살돼 가매장되었다는 것이었죠.
-다른 보도기관은 물론 경찰에서조차 피살여인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마침 이웃 강동경찰서 관내인 잠실6동 장미아파트에서 박상은양의 가출신고가 접수된 것을 알아내고, 두 사건을 연결지어 경찰보다도 한발 앞서 피살자의 신원을 밝혀냈죠.
-피살자가 박양으로 밝혀지자 경찰은 주변인물 수사에 나서 발견된 날인 21일 저녁 J군을 수사본부로 데려왔죠.
-늦어도 J군을 연행한 이틀뒤인 23일쯤부터 경찰은 벌써 J군을 범인으로 단정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경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처음부터 너무 「심증의 범인」차원에 외곬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가져왔습니다.
-수사진을 채찍질하는 의미에서도 J군의 연행 9일째인 지난달 29일 역시 우리가 가장 먼저 장기연행자의 인권을 문제삼았죠.
-이어 각 신문에서 경찰의 수사태도를 비관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하지만 경찰의 답답한 심정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단을 6천장이나 뿌려 전화건 여인을 수소문하고 그렇게 연일 보도가 됐어도 장난전화조차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한 경찰간부는 과학수사 운운하는데 과학수사는 반드시 약품·기계 등 최신 물리적 수단에 의한 수사가 아니라 어느 용의자의 행적·진술 등에 대한 모순점을 논리적으로 밝혀내는 것도 과학수사의 방법이란 자성론을 펴기도 뱄지요.
-5일하오 경찰은 이례적으로 서강까지 검찰에 나가 구속영장신청을 품신했으나 8시간 가까운 검찰·경찰회의와 기록검토의 결점은 『결론 유보』였죠.
이 결전이 나고 다음날 수사본부는 『영장을 신청할테니 아예 기각을 시켜달라』고 검찰에 요청할 만큼 자신 없는 태도를 보여 J군에 대한 검찰의 직접 심문을 촉발했다는 뒷 얘기도 있어요.
-J군의 귀가결정을 내린 뒤 검찰이나 구속 품신을 했던 경찰 모두 당혹한 표정이더군요. 검찰은 자신들이 계속 수사지휘를 해놓고 뒤늦게 발뺌하는 모순을 드러냈고 경찰은 한마디로 허탈상태에 빠진 거죠. 검찰에 사건이 념어온 뒤 검찰청사 주위를 계속 맴돌던 강남경찰서 수사간부들은 방침이 정해졌다는 소식이 들리자 김검사실 방문에 아예 매달리더군요.
-J군의 석방소식이 전해진 6일하오4시쯤부터 보도진들이 J군의 가족들을 만나려 J군의 집에 하나씩 찾아들자 가족들은 문울 안으로 걸어 잠그고 기자들의 출입을 완강히 막더군요. 더구나 일부사 기자들에게는 아주 못마땅한 태도로『무엇 때문에 찾아왔느냐. 더이상 할말이 없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기자들에 대한 반응이 무척 신경질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았어요.
그동안 J군을 아주 범인으로 단정해 보도한 일부사 기자들에 대해 가족들이 크게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경우는 종종보았지만 풀려나 귀가하는 날까지 그같은 태도를 보이니 조금보기가 안됐더군요. 여하튼 J군이 풀려나게 된데에는 언론의 힘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인데 말이죠.
-그동안 취재과정에서 J군을 한두차례 본이 있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본 J군은 대학3년생 답지 않게 지나칠 정도로 침착한 매너를 지녔더군요. 20여명의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질문공세를 퍼부어도 전혀 당황하는 빚이 없이 간략하고 분명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답하더군요. 그동안 J군을 취조했던 수사관도 모두가 『지독하게 똑똑하다』고 험담하듯 말하던 것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J군은 이날 정작 기자들이 가장 궁금히 여기고 그동안 이슈가 돼왔던 자신의 결백주장이나 고문 등의 질문에 대해선 시종일관 노코멘트 또는 묵비로 일관했어요.
『본인이 결백하다면 무언가 한마디쯤 해야할게 아니냐』 『경찰에서 부당한 대접은 받지 않았느냐』는 등의 질문에 그저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얘기합시다』는 등 한두마디 말로 답변을 피하더군요.
본인은 풀려날 때 경찰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받지 않았다고 말은 하지만 이날 본 J군의 태도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느껴지더군요.
-그같은 느낌은 J군의 부모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받았지요.
경찰부분에 대한 질문에는 당초 강경했던 태도와는 달리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리고 J군의 답변 때에는 슬쩍 엉덩이를 꼬집으며 답변을 막는 모습도 보였지요.
-J군의 귀가를 기다리는 동안 가족들은 뒤늦게 자리를 함께 한 기자들에게 『J군이 고문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었다』는 등 새로운 사실 몇가지를 얘기해주더군요.
가족들은 J군이 연행된 직후 면담을 요청하자 경찰은 『곧 대면케 해줄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신문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니까 전혀 믿지 말고 기자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반위협적으로 가족들의 입을 막았다고 했어요.
가족들은 이같은 경찰의 거듭 약속을 믿고 J군이 고문을 받아 볼에 피가 맺힌 사실을 알면서도 기자들에게 아무런 하소연도 못했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고문 받은 사실은 J군이 연행된지 1주일쯤 후인 지난달 27일 J군의 한 국교동창생의 어머니가 수사관들에게 불려간 뒤 J군을 만나고 왔는데 볼에 피가 맺혀있는 것을 보았다고 가족들에게 전했대요.
-지난달 L일 연행 때부터 6일 귀가할 때까지 거의 숙식을 같이한 형사주임과 J군이 헤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한토막 같았습니다.
『이번 싸움은 내가졌다. 그러나 상은양이 갖고 간 치흔의 진실은 언제고 밝혀질 것이다. 자네와 또 만날 날이 있겠지』라고 하자 J군은 『그 치흔은 내 것이 아니고 상은이는 내가 안 죽였습니다』고 대답했지.
그러자 그 형사주임은 『나도 그 치흔이 자네 것이 아니길 바라네. 그동안 자네와 수사관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주게』라며 악수를 청하더군.
-이 사건은 피해자가 대학미전에 입상한 미모의 여대생이었고 해외여행자율화 조치 후 첫 케이스로 미국을 다녀온 부유층자녀들의 문제였다는데서 세인의 이목이 더 집중됐다고 봐야지요.
-많은 독자들이 애처로이 죽어간 박양을 애도하면서도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젊은이들의 대담한 성관념에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이번 사건은 경찰의 졸속한 수사, 용의자의 인권문제, 매스컴의 보도자세 등 반성해야될 많은 숙제를 던져 준 사건이었습니다.
16일만의 모자상봉. 「수사협조」라는 이름으로 경찰에 불려가 「자백」과 「번복」등 숱한 고비를 넘기고 검찰의 귀가 결정으로 풀려 난 뒤 집에 돌아온 J군을 껴안은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