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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의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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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다트」도 알고 있었다. 아랍일부 강경국가들이 자기를 「제일의 악영」으로·꼽고 있는 것을. 어느날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팔레스타인도 「가다피」(리비아대통령)도 내 생명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신만이 할수있는 일이다.』
바로 이 말을 한지 3년만에「사다트」는 일단의 이집트군 장병들로부터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아마 한 시대의 영웅적 인물치고 그만큼 극과 극을 시계추처럼 오간 사람도 드물것이다.
이집트국민은 그를 보고 「전쟁의 영웅」, 「평화의 영웅」으로 환호한다.
그러나 강경아랍국가들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그를 『배신자』, 『판역자』, 『악영』으로 부른다. 지난77년 그 누구도 쉽게 엄두조차 내지못했던 구적(구적) 이스라엘과의 화해에서 빚어진 극과 극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니 세계역사와 함께 그에게 주어질 또하나의 명칭이있다면 「사히브 알 카랄」-「결단의 사나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의 결단력은 생전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한때 이집트와 밀착되었던 소련은 「사다트」를 「정치의 도구」처럼 다루려했다. 따라서 무기 부품공급도 그린 강요의 무기로 삼으려 했었다.
72년 어느날「사다트」는 훈장을 주렁주렁 단 자신의 정장군복을 입고앉아 소련고문관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당신앞에 누가 앉아 있소?』 소련고문관은 뚱딴지같은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사다트」는 큰소리로 그의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요시프·스탈린」원수요. 무기부품을 당장 가져오지 않으면「스탈린」이 했던 것처럼 당신을 다루겠소!』
그는 체질으로 미국사람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책상에 발을 올려놓고 길게 앉을수 있는 평등주의(이갤리테어리언) 』가 기분에 맞는다는 것이다.
역시 미국인도 그를 좋아했다. 한때는 갤럽조사에서 제일 인기높은 외국정치인이었다.
1970년 「낫세르」대통령 작고이후 「사다트」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만해도 그 누구하나「오늘의 사다트」을 상상하지 못했다. 『「낫세르」의 강아지(푸들)』『검은 당나귀』의 별명이 붙을정도로 그의 위치는 존경과는 거리가 있었다.
l948년 영국지배하의 감옥에서 풀려난 「사다트」는 「지게꾼」「트럭운전사」「헌 타이어상인」으로 전전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사다트」는 오늘의 「사다트」로 군림할수 있었다. 다만 그는「시대의 각광」을 등에 업고 최근 국내정적들, 반대세력들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쳤었다. 「인기의 오만」이었을까.
그런중에도 그는 인간적고립에 향수를 느꼈던듯 『조용히 향리에서 만년을 보내고 싶다』는 말도 최근에 했었다.
세계의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고볼 일이다. 우리는 세계평화에 기여한 한지도자의 서거에 경건히 애도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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