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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에 찾아올 손님들 실망시키지 말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결국 우리나라가 일본을 힘차게 누르고 압승하는 순간 전율에 가까운 신선한 기쁨이 전신을 물병처럼 출렁이게 하였다.
물론 간절하게 우리쪽에 열쇠가 쥐어지길 바랐으나 일본의 도오꾜올림픽의 전력(前歷), 그들의 경제·정치·문화 등 국제적 일선에서 세계열강과 어깨동무를 하고있는 사실은 이미 아는 까닭에 나고야의 승리로써 아픈 패배감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희미한 희망을 걸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숫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게다가 둔감하기조차 하였던 나에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숫자라는 것이 형이상학적인 기쁨, 혹은 인식의 세계까지도 침범할 수 있다는 미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개별적인 체험이지만 말이다.
이 숫자 「52대27」 속에 52라는 정정당당한 투표로써 획득한 숫자의 의미는 일반적 의미를 훨씬 능가하고 상회하여 나의 사랑하는 코리아만의 개별적이고 단독적인, 복잡하고 아름답게 다양한 체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밝고 무한한 행복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국민만이 바라고 있는 여러 본질속에 중요한 요소로서 몹시 즐거움에 가득차게 하는, 민족의 개별적·단독적 체험의 핵심 그것이기도 하다.
이 소식에 접한 이 땅의 모든 이들도 그러하였으리라. 그 상대가 또한 역사적으로나 다른 무엇으로나 늘상 묘한 관계에 있는 일본이었기에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진실로 가지고 싶지 않았었다. 그래서 유쾌하기조차 하다. 그리하여 길어서 늙은 역사가 되지 않고 튼튼하고 강한 역사, 저력의 한국을 가만히 정다운 눈으로 응시하고 싶다.
그러나 이 흥분의 도가니, 벌컥 뒤집힌 기쁨을 축제 분위기, 그것으로 시작하고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들의 기쁨과 흥분과 승리의 환호성은 책임감 있는 것이어야 한다. 혼신의 열의로 유치했다손 치더라도 이 일이, 유치하기 위한 유치작전의 성공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만족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일은 동양권에서 두번째 올림픽개최국이라는 영예를 얻어냈고 국제적 기쁨에 흠뻑 젖게 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한꺼번에 실망을 줄 수도 있는 최악의 기회가 될 염려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최선의 노력으로 유치한 이번 경사를 우리국민은 높은 차원에서 책임감 있는 신중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에 꿈을 가지고 찾아오는 1988년의 손님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며,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커다란 것에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맞아야할 것이다.
6·25동란이라는 비극적 존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던 세계속의 코리아의 이름은 88년도의 올림픽을 계기로 전설적이고 기념비적인 이름으로 쇄신되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그네들과 어깨동무로 신뢰의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24회 서울울림픽을 위해 종합운동장 등 각종 운동시설과 지하철공사 등 서울은 그 면모를 현대 도시로 일신하게 되리라 한다.
어떤 분은 개최국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금메달리스트가 많이 나와야하며 종합성적 15등내지 10등안에는 들어감으로써 국위를 떨쳐야 하리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심사는 어떤 시설 내지 기술을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문화수준의 높이와 넓이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지난겨울 10여일 일본에서 머물렀을 때 길을 묻는 나에게 일본소년의 불친절한 태도가 나라의 장점과 문화인식의 차원까지도 허물어뜨리면서 또렷이, 밉게 남아 있게 하던 미세한 예의에서조차도 말이다.
□약력 ▲1938년 개성산 ▲수도여사대 국문과, 동대학원 졸업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단에 데뷔 (1962년) ▲「현대문학」제4회 작품상수상 ▲현 세종대학 국문과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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