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5)제75회 패션 50년(6)|가정교과서 편찬에도 참여…보급 힘써|복식용어 한글화|대한 복식 연구회 첫 사업으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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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양장점들이 전후의 의복경기를 타고 손님유치 경쟁을 벌이던 때, 뒤떨어진 조국의 복식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복식계 종사자들의 모임이 있어야졌다는 생각으로 몇몇 동료들이 모여 1955년 6월에 발족한 대한복식 연구회는 차차 발기취지에 호응하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게 되었다.
석주선·김교왕씨 등 복식 연구가와 김경애(경기양재학원장) 권갑정(서울편물학원장) 서상국(대한복장학원장) 박순기(서라벌양재학원장) 최숙현(새마을양재학원장)씨 등 각 양재학원장들과 자수전공의 석춘길·최면여씨, 디자이너 한희도·방재숙씨 등이 참여하면서 모임은 한층 활기를 띠게 되었다.
임의단체에서 협의체로 발전하면서 연우회는 한재·양재·편물·수·예·액세서리·인형· 조화·꽃꽂이·목공예의 9개 분과로 구성되었는데 앞서도 밝혔듯 초대회장의 중책은 필자가. 부회장은 서수연씨가 맡아 일을 해나갔다.
연우회 학원들을 당시 일본어로만 통용돼 온 양재 용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일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전체적인 컷 사업으로 양재용어 정리작업을 펐다.
일본 통치에서 벗어난 지 4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기술분야에서는 비단 복식 계뿐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일본말 용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당시 복식업계에서 통용된 말은 1백%가 일본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편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디자이너로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까지 그 동안 입에 익은 대로 소매대신「소데」,깃 대신「에리」라는 말이 뛰어 나오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매나 깃 같은 일반적인 말조차 그럴 지경이니 옷을 디자인해서 마름질하고 꿰매는 작업과정에서의 전문용어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양장점이나 의류공장의 작업과정에서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양재학원에서 의상 디자인을 배우려는 후배들을 지도하는데도 고층이 많았다.
그래서 연우회 멤버들은 각자 바쁜 시간을 쪼개서 머리를 맞대고 일본말 용어를 자연스럽고 합당한우리말로 바꾸는 일에 열중했다.
우리말로 고치고 다듬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막상 새로 고친 우리말 용어를 일반에게 응용시키는데는 많은 난관이 따랐다.
그 당시 복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일본말 용어가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입에 선 우리말 용어를 새로 익힌다는 것이 쉽지 앉았다.
뿐더러 일본말이 오히려 더 잘 통하는 상황에서 구태여 힘든 우리말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거나 깨닫는 이들도 별로 없었다.
해방 후 새로이 양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조차 선배 기술자나 학원선생님이 일본말 용어로 가르치는 형편에서 우리말 용어 보급은 이래저래 어려웠다.
그 무렵 문교부에서는 각급 학교 가정과 교과서편찬문제도 있고 하여 1957년 10윌 양재술어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대학 가정학과 교수나 여고 가정과 교사 등과 함께 연우회에서는 김교옥·서두연씨와 필자가 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함께 작업을 했다.
이미 연우회 단독으로 경리작업이 끝난 단계였으므로 문교부에서의 정리 파경은 한결 수월했다. ·
그러나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여러 위원들의 희망과는 달리 용어 집은 끝내 책으로 볶여 나오지는 못하고 말았다.
아쉬운 대로 연우회 멤버들은 그때까지 고치고 다듬은 우리말 용어들을 묶어 프린트해서 각 양장점이나 봉재 공장·양재학원 등에 들리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디자이너강습회를 열어 강습 과정에서도 우리말 용어보급에 많은 신경을 썼다.
연우회가 기울였던 이러한 노력은 그 후 꼭 20년이 지난 1976년 4월에야 겨우 열매를 맺었다.
해방 된지 30년이 넘고 의류업계가 중요 수출산업으로 발전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복식업계의 일본말 잔재는 여전했는데 1974년 4월 한국 의류수출조합이 봉제통일용어 재정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일본말을 모르는 해방 후 세대들마저 선배 기술자들에게서 배운 일본말 용어를 뜻도 모르는 채 사용함으로써 발음조차 이상하게 왜곡되고 와전되는 등 말의 오염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정부로부터 봉제 통일용어 심의분과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총3백16개 단어의 순수 우리말을 제정하는데 참여했던 필자는 1976년 4월 출판원『봉제통일용어』집을 받아드는 순간 연우회 초창기에 심은 씨앗이 20년만 에야 열매를 맺은 남달리 감회가 깊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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