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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처음 짓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박근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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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른봄부터 시작된 공사는 유난스레도 무덥던 여름을 거쳐 가을이 오기까지 질척거리며 계속되고 있다.
『갓 마흔에 첫 버선』이란 옛 속담 같이 나에게 있어서 이번 공사는 『갓 쉰의 첫 집』인 것이다.
주변머리 없는 가난함의 한 상징적인 표현이겠으나 그 속에 해학과 여유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 그 속담을 빌어 집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지들에게 건네는 나의 답변인 셈이다.
사실상 이 갓 쉰에 비로소 첫 집을 짓는 주변머리가 오죽하겠으며, 그 경제사정 또한 알만하지 않았겠는가.
남은 여생 즐기며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해서 감독하겠노라는, 믿을 수 있고 실력 있는 벗을 마다하고 우리부부가 경제적인 길을 택해본 것이, 이 일의 잘못의 시발이었다. 그래서 나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죽는 수에 짐을 짓는 거란다! 네 남편이 나서면 몰라도 아예 여자가 할 일이 아니다.』나의 아버님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지혜로써 나온 충고도 넓은 화실에 대한 오랫동안의 욕구가 귀에 들어오지 앓도록 가로막아 놓았다. 집이 올라갈수록 아버지의 충고가 뼈저리게 와 닿았고 나는 늙어갔다. 그리고 탈진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남편은『당신 없는 그 집이 무슨 의의가 있겠소!』했다.
멀리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도 꿈에 내가 보여 편지를 쓰노라는 사연과 함께, 꿈 내용이 실려 있었다.
물이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 앞에 내가 파리하게 서 있더라는 것이다. 솥의 물이 거의 다 쫄아 들어서 친구는 걱정으로 속이 타다 꿈을 깼노라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나 아닌가하는 시련 속에서 나는 인간의 심연, 그 깊이에 하나로 이어져있을 절대자에게로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었고, 적나라하게 보여지기 시작한 나의 허물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나는 이 생에 태어나 처음으로 무릎꿇고 빌 수 있었다.
벗겨 내도 벗겨내도 두텁게 씌워져 있는 자만의 껍데기들-그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집을 짓는다는 과정에서 치르는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남의 전문분야는 의식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처구니 없이도 나는 쉽게 보았었고, 보석같이 믿을 수 있는 내 친구들의 소중함을 감사할 줄 몰랐고, 어떠한 희생도 달게받으며 물심양면으로 돕는 부모와 언니의 사랑도 당연한 것같이 생각하던 내가 느껴졌다.
주제넘게 큰 화실의 욕망은 앞뒷집의 입장과 전체 분위기도 생각지 않은 채 넒은 공간만을 내세웠던 것이다. 나는 정말 얼마나 어리석게 자신을 버리고 살아왔던가.
이제 가을과 함께 서서히 짙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어려운 시련을 통해 벗은 허물들로 해서 얼마간 맑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렵게, 힘들게 모습을 드러낸 새집의 창가에서면 서울에서는 좀체 보기 드문 까치 등 우리가 고목나무에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저녁이면 그 너머로 붉은 놀이 진다.
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창을 주시기 위하여, 그야말로 홀로 보기조차 황송한 이 절경을 주시기 위해 절대자는 내게 집 짓는 시련을 안겨주셨는지도 모른다.
집 짓는 동안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그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모두 용서해줄 아량을 길러보아야겠다.
약력 ▲32년 평남 평양출생 ▲서울대미대 회화과 졸 뉴욕 플래트 미술학교 연수▲3회의 개인전, 4회의초대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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