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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홍식의 시대공감

300년 동거해도 '한 지붕 두 가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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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가 돼야 하는가.” 오는 18일 주민투표에서 400여만의 스코틀랜드 유권자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나라를 이루기로 조약을 맺은 게 1707년의 일이다. 이제 300년 넘는 관계를 지속할지 아니면 청산하고 따로 살지, 선택하는 기로에서 선 것이다. 물론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택하더라도 과거 영국의 식민지들이 독립을 쟁취할 때만큼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합병에도 불구하고 지난 3세기 동안 고유의 법과 제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9년 이후 더욱 강한 분권정책으로 스코틀랜드는 자신만의 의회와 정부를 갖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도 지난 2011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승리하여 런던의 중앙정부와 협상한 결과다.

이번 주민투표를 앞두고 스코틀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주요 정당들은 2012년부터 ‘예스 스코틀랜드’라는 연합을 형성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반면 영국 전역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노동·자유민주 3당은 ‘더 나은 동행’(Better Together)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독립을 반대해 왔다. 지난 2년 간 실시된 여론조사들은 독립 반대 의견이 계속 다수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막상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찬성 여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독립을 선택한다면 당장 경제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더 나은 동행’의 주요 3당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파운드 스털링이라는 영국의 화폐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반면 독립 진영은 파운드 스털링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으로 불거진 영국의 경제적 불확실성은 파운드화 가치와 스코틀랜드에 거점을 둔 기업들의 주가를 동반 하락시켰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영국의 일원으로 누려온 유럽연합(EU) 회원국 지위도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이 자동적으로 유럽에 가입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회원국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려는 경우는 없었다. EU 본부 차원의 협상을 통해 스코틀랜드에 회원국 지위가 부여될지, 아니면 신입 회원국처럼 기존 28개 회원국 전부의 찬성이 있어야 회원국 신분을 유지할지는 분명치 않다. 후자일 경우 스코틀랜드의 EU 진입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카탈루냐나 바스크 분리주의에 직면한 스페인과 같은 나라가 쉽게 찬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 스코틀랜드가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이 될 수 있을지도 논쟁거리다. 반핵을 주장해온 SNP의 입장이 NATO 참여에 걸림돌이다. 영국도 곤경에 처하게 된다. 사실상 잉글랜드만 남은 영국이 유엔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고수한다면 유엔은 독일·인도·브라질·일본 등 신흥세력의 강력한 진입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분리는 대영제국의 상징적 종말을 의미한다. 300년 전 두 왕국의 통합으로 영국이 출범하면서 유럽 귀퉁이의 섬나라가 세계사의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글래스고대학 교수로 스코틀랜드인이었던 애덤 스미스는 1776년 발표한 『국부론』에서 시장 규모의 확대와 사회적 분업이 자유주의 경제발전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으로 영국의 민족경제가 성장한 결과다. 1801년 아일랜드까지 합병한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팩스 브리타니카’를 실현했다. 그리고 일명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라는 정체성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킬트라고 불리는 남성용 스커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면서 행진하는 군악대는 영국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는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 산악지역 하이랜더(Highlanders)의 전통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비가 잦은 이 나라의 필수품인 방수코트와 ‘타탄체크’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고유의 격자무늬 패션이 결합해 탄생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이 상징 역시 종말을 고할 판이다.

투표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영국이 300여년의 공통된 역사와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인들의 가슴에 쌓여온 주변인·소수자·을(乙)이라는 컴플렉스와 불만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잉글랜드는 경제적 계산을 앞세워 동행을 주장하지만 자존심과 존엄성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인들의 민심과 정치적 독립주의를 근본적으로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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