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품 속의 현장을 무대에 재연|세트 디자이너 김시미양|KBS입사 4개월····제3TV의 회화프로·문예살롱 등 맡아|대학 때 전공한도자기 공예가 큰 도움이 됐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백 개의 조명등이 천장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좌담 프로용인 듯한 세트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버스정류장 푯말이 박힌 거리일각도 눈에 띤다. 금방이라도 소박한 아낙네들의 소근거림이 들릴 것 같은 시골 우물가도 한옆에 자리하고있다.
KBS 별관1층 B스튜디오-이곳이 입사 4개월 째의 애송이 사회인 김시미양(23)의 소중한 일터다. 그녀의 직함은 세트디자이너.KBS 미술2부 소속이다.
『세트 디자이너란 문자 그대로 어떤 프로의 배경이 되는 세트를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사람이지요. 작가나 연출자가 머리로 구상한 것을, 보다 효과적이고 생생하게 현실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까요)
올 봄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김양의 전공은 의외로 도자기공예. 그러나 얼핏 세트디자인과는 아무 상판도 없어 보이는 도예공부가 지금의 자신에게는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흙을 발로이기는 작업에서부터 가마에서 완전히 구워져 나올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자기가 발벗고 뛰지 않으면 안돼는 게 도자기공예예요. 세트를 세우는 작업도 하나 틀린 게 없는 것 같아요』
경험 있는 선배는 누구나 선생님으로 여기고 귀찮을 점도로 캐물어 가며 열성을 쏟은 탓인지 4개월 경력에 비추어 파본 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프로를 맡고있다. KBS 제3TV의 영어회화I·Ⅱ, 불어 회화, 일어 회화, 여성백과의. 수직·원예·문예살롱 등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세트가 모두 그녀의 솜씨.
프로그램의 주무대가 되는 메인 세트는 한번 제작하면 보통2∼3개월은 쓰지만 보조세트의 경우 한번 쓰면 그만이어서 거의 하루에 하나 골로 새 세트를 구상해 내야한다.
디자인 구상은 보통 하오 시간을 할애한다. 도안 지를 앞에 놓고 머리 속의 무대를 펜으로 옮기는 시간을 빼면 그녀가 사무실에 붙어있는시간은 거의 없다.
세트 디자이너는 연출자와는 또 다른 의미로 『끝까지 화면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 에 자신의 프로가 녹화될 때는 부조정실에 앉아 빠짐없이 모니터 해야하고 상오시간은 작업지시와 세팅감독으로 다 보낸다.
김양의「지시」와「감독」을 받는 사람 중에는 경력10년이 넘는 베테랑 세트맨들도 수두룩하다.『그분들이 도와주지 앓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가 앉아요.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방송국일 이야말로 협동과 이해가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적 센스와 창의력 못지 않게 주위사람들과의 인화가 세트 디자이너에게는 큰 과제라는 얘기다.
세트맨, 소품 담당자, 작화가 (프로그램의 타이틀 화나 글씨를 맡은 사람), 조명기사, 카메라맨, 오디오맨…등과의 인화가 「함께 하는 작업」이라면, 방송의 메커니즘을 이해 하는 일, 실제 색상과 화면효과와의 차이점을 파악하는 일등은 순전히 혼자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
『수천 점이 넘는 세트 재료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을 골라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려면 세트를 수없이 들락거려 어민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해요.』
대형 드라머나 쇼프로의 세트를 맡은 선배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녀는 하루에 뛰어다니는 거리를 합치면 몇 km는 될 것이라고. 유일한 취미는 전공이기도한 도예.
한치의 틈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방송국생활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도 틈 있을 때마다 홍익대 근처 작업장을 찾아 흙을 만지는 그녀는 그 동안 만들어놓았던 도기 4점을 지난 7월의「우기 도예가회 회원전」 (7월18∼24일·동숭동미술회관)에 출품하기도 했다.
회사원 김철호씨 (52) 와 꽃꽂이연구가 이길선씨 (50천)의 1남2녀중 장녀. 일요일이면 빠짐없이 영락교회 예배에 출석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KBS 미술1부의 장지이씨, 미술2부의 김유숙씨와 함께 세트디자이너 홍삼점을 이루고있다.『언젠가 대형세트를 만들게 될 날이 오겠지만 현재로는 그저 욕심부리지 앓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김양에게서 오히려 만만치 않은 투지가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덕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