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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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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는 86년까지 추진될 5차5개년계획엔 반도체공장과 컴퓨터·교환기공장건설이 포함되어있다. 우리나라에도 반도체산업의 신기원이 열릴 징조다. 그러나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벌써 64킬로비트 마이콘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이나 최근 16비트 마이콘 양산에 들어간 일본의 수준에 이르려면 피나는 연구축적이 있어야 한다. 「연구축적」은 단순한 실험실의 작업만은 아니다. 기술개발에 앞선 기술섭취노력이 유별난 것이 일본이다. 그 점에서 일본의 산업스파이활동은 볼만하다. 일본이 IC(반도체)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서둘러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만 서남쪽에 있는 「실리콘·밸리(골짜기)」를 활동무대로 삼았다. 이곳은 한때 과수원들로 뒤덮였던 널찍하고 비옥한 농토였다. 지금 이곳은 수십개의 반도체공장들로 들어섰다. 바로 미국전자혁명의 산지가 된 것이다. 한 반도체전문가는 미일간의 반도체 정보전을 『실리콘 골짜기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기술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하려는 국가목표를 세우고 있다. 86년말까지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2억5천만달러를 정부와 기업이 공동 투자하는 초LSI계획도 세웠다. 일인의 정보수집노력은 수단방법을 초월한다. 일인들은 우선 「실리콘·밸리」근처에다 일본기업의 「연락사무소」를 차려놓는다. 부사통과 일립이 그 대표다. 부사통은 컴퓨터생산업체인 「앰달」사에 28%의 주식투자를 한 후 공장근처의 몇채 건물에서 20여명의 일인산업스파이를 배치해 활동하고 있다. 「연락사무소」는 반도체전문가들이 지휘하는 벙커나 다름없다. 그들은 물론 공식적인 반도체관계회의나 전시회·강좌 등에도 열심히 참석한다. 새로운 설비나 기구의 샘플이라면 나사못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구입해 일본으로 보낸다. 정상적으로라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1년정도 걸려야할 연구소재도 몇마디 통화로 간단히 얻어버린다. 그러기 위해 일인들은 이곳 공장의 기술자와 은밀한 개인접촉을 갖는다. 명색은 「정보교환」이지만 실은 일방적 스파이활동이다. 스파이들이 노리는 것은 연20%나되는 이직기술자들이다. 일인들은 이들과 계약하에 조언을 받는다. 하루에 5백달러일 경우도 있고 장기자문의 경우는 6만달러에 이르는 것도 있다.
최근 출현한 반도체스파이군은 특히 「호랑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수년전에 반도체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포토마스크」를 기막히게 도둑질해 일본에 가져간 것도 이들이다. 이들은 가끔 「기피인물」로 낙인찍히고 강제출국 당하기도 한다. 최신기술획득수단으로 일인들은 미국기업과의 장기협약에 의한 기술개발방법도 쓴다. 이제야 반도체산업에 눈을 뜬 우리에겐 타산지석의 일면이 없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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