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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작업의 바람직한 방향|유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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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유방임주의 아래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작은 정부」는 바람직한 목표로 생각되었다.
대공황이 일어나고 뉴딜 정책 등이 질시됨에 따라 정부의 기구는 급속히 커지고 예산규모도 크게 팽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정부는 제2차대전의 발발과 그후 냉전의 계속으로 196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 석유파동이 일어나고 인플레가 심해지자 「작은 정부」에의 움직임이 각국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정부기구의 축소와 예산의 절감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행정학에서도 1970년대에 들어 감축관리(cut-back manegement)라고 해 어떻게 기구나 사업을 큰 저항 없이 축소하고 예산을 절감하느냐하는 문제가 연구 대상이 될 정도가 됐다.
「레이건」미 대통령의 등장은 이런 경향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예산의 절감과 감세를 제안해 관계법안의 의회의결까지 얻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시대조류에 발맞춰 이번에 기구 정비안이 나온 것으로 안다.
오늘날과 같은 「가분수」모양의 행정관서와 소국소과주의의 팽대한 정부기구가 생겨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정부 주도형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에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원인으로 역대 각 부처 장관들의 엠파이어 빌딩(Empire-building)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장관들이 재임기간에 기구를 확대하고 정원을 늘리고 자리를 격상하는 것을 큰 업적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 4·19와 5·16직후에는 많은 고급 공무원의 숙정으로 승진의 기회가 많았으나 60년대와 70년대에 공무원사회가 비교적 안정됨에 따라 승진기회는 출고 과장·국장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승진기회의 감소가 기구의 팽창, 고위직의 남설, 지위의 격상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더구나 공무원의 적정하지 못한 보수 수준까지 겹쳐 고위직의 증설에 의한 승진과 그에 따라 보수의 증액을 갈구하는 공무원사회의 욕구는 더욱 강렬해졌다.
비록 공무원사회의 욕구가 강하더라도 이를 억제하고 제동을 거는 장치가 재대로 마련되어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터인데 지난73년 비상국무회의에서 전면 개정된 정부조직법은 기구 팽창과 고위직 남설을 억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국이 정부조직법 규정 사방이었으므로 국을 신설하거나 폐지하고자 할 때에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했다. 그런데 73년에 개정된 법은 국을 삭제하여 국의 설치나 폐지를 대통령령에 일임했다.
또 입법사항이었던·지방 체신청·지방병무청과 같은 특별지방 행정기관도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토록 되었다.
뿐만 아니라 70년에 신설된 담당관제도를 그대로 계승했다. 순수한 막료업무만을 담당시키려던 담당관 제도는 계선 기관으로 탈바꿈했으며 정식과나 국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교와 같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2급(종전 2갑) 3급(2을), 4급(3갑) 담당관이 급증하게 되어 2, 3급 담당관 1백96명, 4급 담당관이 1백45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날과 같은 팽대한 기구와 고위직의 급증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지나치게 커진 정부기구와 가분수 모양의 행정관서를 수술하여 「작은 정부」를 이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기구정비에 있어서는 정부가 수행해야 할 기능에 비추어 부처조직을 결정하고 이어서 부처의 내부조직을 검토·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계속성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정부로서는 이번에는 각 부처의 내부조직만을 정비하고 부처간의 업무 재 배분이나 부처의 통폐합문제는 뒤로 미루고 있다L예산을 절감하는 방안에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레이건」행정부의 경우와 같이 프로그램의 재검토를 단행하여 불필요하거나 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의 예산용 삭감하는 방안이며, 둘째는 프로그램에 대한 검토는 그대로 두고 예산의 낭비적 요소만을 제거하는 방안이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전자만을 실천에 옮겼으며 우리정부는 우선 둘째 방안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의 기구정비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과제로서 두 가지만 지적해 두고싶다.
첫째는 공무원의 사기저하다. 2백여개의 직위가 폐지됨에 따라 많은 4급(3갑)이상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문제될 수 있다. 총무처당국은 현재의 인원이 축소되는 정원에 일치될 때까지는 초과 정원제롤 운용하고 기구축소로 인해 해임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데 이러한 언약이 명실공히 준수되었으면 한다.
둘째는 재발의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문제다.
불필요한 기구의 방지와 고위직의 남설을 막기 위해 정부조직법의개정이 필요한 것 같다.
73년 이전과 같이 국과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실치를 입법 사항으로 환원하고 남용의 여지가 많은 담당관제를 폐지하거나 적절한 규제를 가하도록 해야 한다.
대공황 전에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던 「작은 정부」는 자유방임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대공황, 재2차 세계대전, 냉전을 거치는 동안에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뒷전에 밀려났다.
70년대에 들어와서 에너지 파동과 격심한 인플레 등으로 「작은 정부」를 외치는 소리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경제계 등에서 요구하는 「작은 정부」는 민간 주도형 경제의 기초 위에 정부기능의 축소를 이룩하고 여기에 따라 정부기구의 축소와 예산의 절약을 구현해보자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기구 정비안은 부처의 내부조직을 축소하고 고위직을 많이 폐지한다는 뜻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한 조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부 기능이나 사업의 검토 조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처의 통폐합도 뒤로 미루었다는 점에서 경제계 등이 요구하는 「작은 정부」와는 이론적인 기초를 달리한다고 봐야겠다.
국내시장이 협소하고 부존자원이 빈약한 까닭에 수출 주도의 대회 지향적 개발전략을 계속 추구해야 하는 우리로서 정부기능의 축소가 과연 현명한 일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겠느냐는 물론 다른 차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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