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자신의 낙관 새기려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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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돌에 글자를 새긴다. 그러나 글자만이 아니다. 마음과 점성을 새기는 것이다.
『전각과 도장(인)은 격이 다릅니다. 이발관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그림이 도장이라면 전각은 「각고의 예술」입니다.』
아호나 이름을 한글로 전각하고 있는 시인이며 영화평론가인 김종원씨(45·서울의주로 서소문아파트 810호)의 말이다.
흙으로 빚은 도자가 불길에 따라 자태를 달리해 「파격」을 만들어 내듯이 전각은 칼을 잡는 힘에 따라 밑글자가 엉뚱한 선을 연출해 내는데 그묘미가 있다고 한다.
칼로 돌에 획을 긋다보니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못이 박힌다.
잡념이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작업이다. 「정신일도하사불성」을 배운다고 했다.
『강냉이 사설』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한 김씨는 40줄에 들어서면서 서예를 시작했고 자신의 낙관을 새기기 위해 전각을 취미로 택했다. 그러나 김씨의 전각 취미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통」 같은 것.
선친인 악원 김규형씨는 전각가로 1937년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격주상미원이라는 인장포를 차렸으며 제주시에 있는 보물 322호 관덕정 편액을 판각했다.
『글자에 희화성을 부여해야 전각이 갖는 아름다움을 맛 볼수 있지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의 한글 전서체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한문을 전각하는 대가는 많기 때문에 한글 전각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원인』을, 『김씨종원』으로 전각하면서 한글을 여러 가지 형태로 상형화해 보고 있다.
김씨가 전각한 낙관은 70여점. 이가운데는 미당 서정주씨의 한글 낙관을 비롯, 대부분 시인들의 것이다.
낙관은 앞 낙관·아호·이름 등 3개가 한 세트로 대개 이름은 음각, 아호는 양각을 하고 앞 낙관은 사람에 따라 음각을 하기도하고 양각을 하기도 한다. 김씨는 앞 낙관도 음·양각을 병행해서 전각하여 동료들에게 선물했더니 『조화가 이뤄 줘 좋다』는 징찬을 들었다고 했다.
낙관은 동양화에서 여백의 조화를 위해 찍었다는 말이 건해지고 있다. 동양화에는 적을 때는 한두개, 많을 때는 십여개의 낙관이 찍히며 몇 명의 화가가 합작한 작품에는 더 많은 낙관이 동원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왕부에서 인장이 쓰여졌지만 고려중기에 이르러 개인의 가인, 명인들의 사인이 널리 사용됐다.
『전각 취미는 인내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각적인 미를 담고 있어야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어야한다』 는 김씨는 한글 서예에는 한글 낙관이 어울리는 것 같아 서예가들에게도 한글낙관을 선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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