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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확인' 요구하는 성매매 업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매매 업소들이 경찰의 눈길을 피하는 장치를 강화했다. 이용하려는 이들의 신원 확인을 사전에 요구하는 방식이다. 신분증이나 재직증명서를 사진찍어 보내라고 하고, ‘타업소 이용 경력’까지 물어보고 있다. 이용객을 가장한 경찰이 아닌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또 실제 성매매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속칭 ‘중간 접선 장소’를 두 번 세 번 바꾸는 등 첩보물 같은 작전을 벌이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처럼 음지로 파고드는 성매매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의 협조 아래 국내 최대 성매매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업주들과 접촉했다. 부산 지역 164개 업소가 배너 광고 등을 올려 놓은 사이트다. 사이트에 나온 방문자 카운터에 따르면 하루 6000명 안팎이 이 사이트에 들르고 있다.

사이트는 업소 스스로 올린 안내글 게시판, 이용후기 게시판 등으로 꾸며졌다. 글 내용은 거의 암호 수준이다. ‘동래 ㅇㄹㅁ, ㅁㅁ좋은 NF’식이다. ‘부산 동래구의 아로마(ㅇㄹㅁ) 마사지 업소에 몸매(ㅁㅁ) 좋은 뉴페이스(신입 여종업원ㆍNFㆍnew face)가 있다’는 의미다. 사이트에서는 ‘글을 해석해 달라’는 게시물도 많았다.

업소 광고는 전화번호 각종 사진, 그리고 ‘우리 업소는 인증을 요구합니다’라는 글로 이뤄져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전화는 100% 대포폰(남의 이름으로 개통한 휴대전화)이다.

커뮤니티에 광고를 낸 업소 중 20곳에 접촉했다. 19곳은 아예 응답이 오지 않았다. ‘인증을 요구한다’는데 인증 서류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소들은 ‘인증을 요구한다’고만 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알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는 뜻이다. 경찰에 따르면 업소 상당수는 인증 자료로 ‘타업소 이용 경력’을 원한다. “어디어디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문자메시지 등으로 알리면 업주끼리 연락해 정말인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아니란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재직증명서를 보내라고도 한다. 이용자가 “내 정보를 넘겨주면 나중에 적발됐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느냐”고 반문하면 “이렇게 철저히 하기 때문에 경찰에 걸리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계속 실패 끝에 지난 5일 한 업주와 접촉이 됐다. 전화를 통해 이런 말이 오갔다.

“예약하고 싶다.”(기자)

“다른 업소 이용했던 걸 증명할 수 있나.”(성매매 업소 주인)

“이용한 적 없다.”(기자)

“그럼 안 된다.”(주인)

“다른 지역 사는데 추석 지내러 부산에 왔다.”(기자)

“증명해라.”(주인)

“(주소지가 적힌 운전면허증을 사진찍어 보낸 뒤)증명할 수 있는 걸 보냈다.”

“직업이 뭐냐.”(주인)

“생산직이다.”(기자)

“금요일에 왜 노나.”(주인)

“교대 근무 휴일이다.”(기자)

“명함 사진 찍어 보내라.”(주인)

“초짜 생산직이라 명함이 없다.”(기자)

“○○백화점 후문에서 전화해라.”(주인)

“(지시한 위치로 옮긴 뒤)왔다.”(기자)

“□□수퍼마켓 앞에서 다시 연락해라.”(주인)

“(이동한 뒤)도착했다.”(기자)

경찰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접선 장소를 바꾸면서 어디선가 지켜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화가 오간 후 ‘△△오피스텔 XXX호실로 가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피스텔 벨을 누르자 20대 초ㆍ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문을 열어줬다. 다음 순간 대기하던 경찰이 여성을 검거했고, 오피스텔 계약자를 추적해 성매매업주 조모(30)씨를 붙잡았다. 조씨는 경찰에서 “신원 확인을 철저히 하면 이용객은 줄지만, 그게 경찰에 걸리지 않는 현실적인 방법이어서 부산지역 업소 거의 모두가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진술했다.

성매매 업소들이 이처럼 사전에 신원을 확인하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다. 마사지업체인 것처럼 전단지를 뿌려가며 성매매를 하다가 그마저도 단속에 걸리자 이젠 신원 확인을 통해 경찰 접근을 사전 차단하는 것이다. 부산경찰청 박성룡 풍속광역수사팀장은 “현장 적발이 더 어려워졌지만 최대한 신원을 감추고 접근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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