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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만주면 뭐든지 합니다"|세무원 청부살인 한 폭력 조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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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번 사건은 세금추징에 앙심을 품은 한 상인이 직업 해결사를 고용해 저지른 청부살인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자유당시절 이정재로 대표되던 조직폭력배가 아직도 우리사회의 그늘에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질이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살인을 청부받은 폭력단 두목 이암은 진양 부동산이라는 복덕방간판을 내걸고 사무실에 전화와 여 종업원까지 두고 있었지만 경찰이 밝힌 이의 직업은 다른 조직폭력배가 그렇듯이 폭력을 이용한 전문해결사.
조직폭력배와 해결사는 같은 얼굴로 복덕방은 어디까지나 부업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시장주변에 기생하면서 서로의 이해를 쫓아 상인들과 야합하거나 결탁해 「사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폭력배를 동원, 범행을 사주한 상인 김씨는 67년 7월 서울동대문시장 광장시장의 모직물가게 종업원으로 출발, 72년 3월부터 현재의 직물가게를 운영해 왔다.
취급품목은 양복·양장 지 등으로 종업원 9명을 두고 있으며 연간 외형 거래 액은 3억여 원.
김씨와 폭력배 두목 이는 출신고교는 다르나 고교재학 때 서울 장충동 한 동네에 살며 알게 돼 군복무·동대문시장 종업원을 함께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
이는 67년 4월부터 동대문시장 종업원으로 일하다 3년만에 독립, 72년부터는 서울 을지로2가에서 진양 부동산이라는 복덕방간판을 내걸고 해결사 노릇을 해 왔다.
평소 동대문시장 등을 중심으로 폭력배로 자라 온 이는 지난해부터 자신의 사무실에 김 등 부하 5∼6명을 두고 침식을 제공하며 각종사건해결에 이들을 동원하는 등 폭력조직을 키워 왔다.
이의 하수인 김 등 폭력배들은 이가 취급하는 골동품·서화 등을 중계하던 관계로 이에게 고용됐던 것.
해결사 이는 이같이 20여년 전부터 김씨와 알게 돼 그 동안 동대문시장주변에서 함께 잔뼈가 굵으며 친구를 맺어 온 이는 친구 김씨로부터『강씨를 혼 좀 내주라』는 부탁을 받자 평소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칼잡이들에게 강씨 살해를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칼잡이들은 지난달 6일 하오2시쯤 강씨가 근무하고 있는 북부세무서에 찾아가 강씨 얼굴을 익히게 했다.
이는 지난달9일 하오7시쯤 부하폭력배와 함께 북부세무서 앞에서 강씨를 기다리다 퇴근하는 강씨를 미행, 하오9시쯤 서울 주교동 소재 일봉 일식 집에서 광장시장상인 3명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 강씨에게 최가 얼굴을 때리고 발길로 차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1차 폭행사건 후 지난달10일 이로부터 전화를 받은 김씨가 『강씨가 얼굴에 상처도 없는데 제대로 혼을 안내 준 것이 아니냐』고 항의, 지난달20일쯤 김씨가 이의 사무실을 다시 찾아가 재차 범행해 줄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원조를 따진다면 해결사는 이정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예나 지금이나 해결사들의 수법은 비슷하다.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원한을 청부받아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지만 대부분은 채권자를 물색, 채권위임장을 받아 채무자를 찾아가 흉기로 위협해 빚을 받아 낸 뒤 채권자로부터 수고 료를 받아 내는 것.
이 과정에서 해결사들은 채무자의 집안 방에 들어앉아 숙식을 같이하면서 괴롭히거나 심한 경우 집안 곳곳에 마구 대·소변을 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든지 해결사에게 걸리면 1주일도 못 가서 결국 손을 들고 만다는 것.
지난해7월 서울관악경찰서에 검거된 서방 파 두목 김태촌(복역 중)이 최근의 해결사로는 대표적인 케이스.
휘하에 10여명의 행동대원을 거느린 김은 1급 해결사로 빚을 갚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베테랑(?)이었다.
보통 빚을 받아 내면 해결사가 30∼50%를 수고 비로 받지만 김은 받아 낸 돈에서 일부를 미리 떼고 채권자에게 건네준 뒤 다시 30%의 수고 료를 받아 냈었다고 경찰은 밝히고 있다.
설사 그 같은 사실을 채권자들이 안다 해도 말을 못했다는 것이다. <오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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