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막걸리 집·바겐세일 애용|달라진 대학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젊은이들의 유행과 멋을 이끌어 온 대학촌이 달라지고 있다.
고급맥주 집 데신 막걸리대폿집이, 고급의상실대신 보세옷가게와 바겐세일기성복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설렁탕 등을 파는 대중음식점에도 발길이 뜸하고 값싼 분식 점만 붐 빈다.
낭만이란 이름으로 낭비를 일삼고 멋을 위해 사치를 즐기던 대학가의 풍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대학촌의 변모는「7·30」과외교사 금지조치이후 대학생들의 주머니 불황 탓으로 풀이되지만 검소하고 차분하게 바뀌는 분위기 속에 대학촌만이 갖는 알찬 성숙이 기대되고 있다.
서울 남 영동에서 숙대 쪽으로 올라가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골목에 자리잡은 간이주점 「할메 집」.
둥근 술상 둘레에 남녀대학생 4명이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문학토론에 열을 올린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안주도 빈약하다.
겉보기엔 술집간판도 없이 남루한 주막이지만 어느 사이엔 가 젊음과 낭만을 발산하는 명소로 변했다.
술집 이름도 이곳을 출입하는 대학생들이 붙여 준 것이다.
막걸리1되에 5백원, 빈대떡 한 접시 5백원, 도토리묵 1접시에 7백원…. 4∼5명이 취할 정도로 마셔 봐야 4천 원 정도면 충분하다.
옛 주막을 연상시킬 정도로 허름한 술집 분위기 때문에 이 같은 대폿집을 찾는 젊은이가 많다.
이곳에 자주 들르는 문희선 양(20·상명사대 1년)은『분위기가 자유로와 마음을 탁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며 몇 번 들르다 보니 이젠 막걸려 4잔 정도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숙대 입구 청파동 골목엔「아줌마 집」「지하살롱」등의 별명을 가진 막걸리 집이 9곳이나 성업중이다.
청파동 골목뿐만 아니라 서울대입구 봉천동대거리의「일미 집」「선구자」등을 비롯, 고대 앞·한양대 앞 등 시내 대학촌에 어느 곳이나 30여 곳의 막걸리 집이 들어서 젊은이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부쩍 늘어난 간이생맥주집도 적당히 품위가 있고 주머니 부담이 적어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
한때 고급술집 골목으로 데이트 족들이 많았던 성대 앞 명륜동골목엔 OB·크라운·GM타운 등 생맥주 집이 10여 곳이나 생겼다.
생맥주 5백cc에 4백40원, 마른안주1봉지에 1백원… 적당히 마시고 마음껏 떠드는 젊은이들로 좁은 홀이 들썩거린다.
성대2학년 채운룡 군(20)은『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된 뒤로 주머니 사정이 말이 아니다』며 옛날「많이 와서 많이 마시자」던 구호가 이젠「적당히 마시고 많이 떠들자」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대학촌의 면모는 옷가게·음식점도 마찬가지.
이대 앞의 유명의상실엔 아이쇼핑 손님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재미를 보는 것은 보세옷가게와 바겐세일 기성복 집이다.
구두 가게도 바겐세일 광고를 내걸어 놓았으나 젊은이들은 2천∼3천 원 짜리 샌들가게로 몰린다.
이밖에 이대 앞 골목의 분식·떡볶이 집, 신촌시장의 순대 집 등도 주머니가 두둑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
이대입구에 새로 생긴 찻집「시나위」도 대학촌의 분위기를 잘 살린 새로운 명소.
우리의 옛 가락을 말해 주는 찻집 이름처럼 국악과 고전음악이 은은하게 흐르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려 녹차·깨차·홍차 등 전통의 맛을 즐긴다.
고대3학년 김재범 군(23)은『대학촌이 흥청대던 시절은 지난 것 같다』며 검소하고 차분하게 자리잡아 가는 대학촌의 모습은 학생들의 향학열과 좋은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