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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경제재건에 성공하면 소군개입가능성 커진다|「폴란드병」동구에 전염꺼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오늘의 폴란드가 마주하고있는 가장 얄궂은 상황은 무엇일까. 그것은 폴란드가 파탄직전의 경제를 되살리는데 성공하는 바로 그만큼 소련의 군사개입가능성도 커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의 역사적인 폴란드공산당대회이후 크렘린은 이단적으로 민주화된 이 공산당을 자유노조의 경우처럼 당분간 두고보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런 태도는 언뜻 관용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어쩔 수 없는 당장의 정치적현실을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워싱턴분석가들에 따르면 이 같은 소련의 전술은 폴란드가 경제재건에 실패할 것이며 따라서 과감한 정치적 실험도 헛되이 끝나리라는 예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계산이 맞는다면 모스크바가 굳이 군사개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련은 골칫거리만 한아름 안겨줄 침공사태를 피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그러나 소련이 허용할 수 없는 것이 한가지 있다.
폴란드경제가 되살아나 정치적 자유화와 나란히 성장하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폴란드병은 동구제국은 물론 소련에까지 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년전 폴란드사태가 터진이래 소련과 동독, 체코슬로바키아등 동구 공산국가들은 자국민들에 대한 선전에서 폴란드의 악화된 경제상황을 강조하고 자유노조의 파업과 바르샤바지도층의 경솔한 타협정책을 비난해왔다. 폴란드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이웃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도움없이는 지탱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또 폴란드가 석탄을 비롯한 각종 원자재를 코메콘국가들에 계획대로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독등 여러나라에선 실업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고 이들은 선전한다.
폴란드의 이웃 공산국 국민들 사이에 솔리대리티 (자유노조) 에 대한 지지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이런 선전활동탓도 있는 듯 하다.
소련의 대 폴란드 전략은 두 가지 전제를 갖는다. 그 하나는 폴란드가 경제재건의 능력이 없으며 따라서 언젠가는 민주화같은「바보짓」을 그만두고 소련의 품으로 되돌아오리라는 희망이며, 또 하나는 그래도 폴란드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는 것은 크렘린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으므로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폴란드경제가 아주 허물어질 경우 무정부적 혼란이 올 것은 틀림없고, 소련은 군사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소련지도층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련은 폴란드에 대한 경제원조를 계속하면서도 그 규모는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조절해왔다. 경제가 아주 죽지는 않을 만큼은 도와주되, 개혁노선을 좇는 폴란드지도층의 입장을 굳혀줄 만큼은 주지 않는 식이다.
외화가 바닥난 폴란드는 수요의 절반 가량이나 모자라는 석유를 예전처럼 세계시장에서 사들일 수 없어 전적으로 소련의 외상공급에 기대야 한다. 천연가스와 철광석, 양털등도 소련이 대주며, 육류는 동독이 공급한다.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폴란드 경제는 이미 몇달전에 결딴났을 것이다.
바로 이점을 소련은 공공연히 강조해왔다. 폴란드인들은 진정한 안정이 어느쪽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폴란드 공산당의 친소강경파가 중도개혁파와 권력투쟁을 벌이며 끈질기게 내세운 것도 바로 이런 주장이다.
한편 서방측도 폴란드 사태에서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달의 오타와 경제정상회담에서 7개 선진공업국지도자들은 폴란드의 정치적 자유화는 서방측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며, 따라서 경제지원은 계속돼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원조계획은 마련되지 않았지만 서방 각국은 나름대로 개별적인 원조안을 짜거나 이미 실시하고 있다. 폴란드가 서방측 정부와 은행에 지고있는 2백70억달러의 엄청난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원금과 이자의 상환기일을 늦춰주는 협상이 여러군데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안정과 재건은 결국은 폴란드국민 스스로가 떠맡아야할 일이다. 문제는 그들이 더 이상의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가, 또 솔리대리티가 경제현실화를 위한 가격인상·임금동결·파업 규제등 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어느 정도 협조하느냐에 있다.
소련의 정책은 폴란드집권층과 솔리대리티사이의 협조가 즉각적 경제안정과 경제구조의 개혁-중앙통제의 완화와 기업자율관리체제같은-으로 이룩할수 있을 만큼 순조롭지는 못하리라는 예측위에 서있다. 크렘린은 또 폴란드당내의 보수강경파가 경제불안을 빌미로 다시 세력을 펴나갈수 있기를 바라고있다.
당장의 혼란말고도 폴란드인들이 맞아들이고 겪어야할 일들은 너무도 많고 복잡하다. 아마도 내년께는 새 의회를 뽑아야한다. 더이상 거수기(擧手機) 노릇은 하지 않을 새 의회는 국민들의 자유분위기와 공산지도층내의 변화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폴란드인들은 또 이 모든 새로운 현실상황에 정치적으로 적응하는 과정도 겪어야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문제다. 폴란드인들은 노력만 하면 정치적·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이런 성공은 소련의 무자비한 반응을 불러일으킬수 있다.
이 경우 폴란드는 소련에 커다란 딜레머를 던져줄 것이다.
스스로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나라를,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침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또 한편으론 어느 정도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성공이 마르크스와 레닌주의의 틀밖에서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공산 폴란드가 증명해 보인다면, 소련으로선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태드·슐츠(공산권전문가·워싱턴포스트기고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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