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잉글랜드만 아니면 뭐든 좋아" 영국으로부터 독립…주민투표 앞둔 스코틀랜드 표정

중앙일보

입력

스코틀랜드에선 ‘ABE’란 단어를 종종 만나게 된다. “잉글랜드만 아니면 뭐든 좋다”(Anything But England)는 표현이다. 특히 운동경기에서 두드러진다. “스코틀랜드인의 요체는 잉글랜드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얘기될 정도다.

20년 경력의 여행 가이드 덕 애트킨스도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 스코틀랜드인이다. 잉글랜드에 대해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스코틀랜드 일대를 안내하며 “절대 정치 얘기를 해선 안 된다”면서 ‘예스(Yes)’라고 새겨진 파란색 배지를 달았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지 여부를 묻는 18일 주민투표에 찬성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잉글랜드한테 오랜 기간 착취당했다”는 취지의 말을 하곤 노르웨이를 거론했다. 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세계적 부국이다.

“노르웨이도 1960년 말 유전을 발견하기 전엔 가난했다. 이젠 세계적 부국이다. 우리도 북해유전이 있는데 못 산다(4만 달러 수준). 영국 정부가 그 돈을 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와 노르웨이는 인구도 비슷하다(500만 명 선).”

독립하면 유전 덕에 노르웨이만큼 부유해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리곤 동행한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출신 여행객 10여 명에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영국 이민자들의 후손들이기도 한 여행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애트킨스는 “너희 나라는 다 독립하고 왜 우리만 그대로 있으라고 하느냐”고 벌컥 화를 냈다.

사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온전히 영연방의 일원이었던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 역사를 ‘잉글랜드에 의한 핍박과 항거’로 인식한다. 그리곤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 “우리가 살아있는 한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한 1320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곤 한다. 1707년 영국과의 합병도 스코틀랜드의 지배층이 주도한 것이지 대중들이 동의한 게 아니라고 여긴다.

최근 사례도 있는데 스코틀랜드인이 ‘그 여자(the woman)’로 부르는 보수당 출신의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의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폐광 등으로 스코틀랜드 노동자 5명 중 1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잉글랜드 북부도 유사한 일을 겪었지만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에서만 벌어진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보수당이 스코틀랜드에서 몰락한 계기였다.
정서적 ‘ABE’를 넘어, 별도의 독립 국가 움직임으로까지 구체화된 건 2007년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집권하면서다. 분리·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18일 주민투표까지 이르게 됐다. SNP는 줄곧 “독립해야 잉글랜드보다 잘 살게 된다”고 주장했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점차 SNP의 주장에 솔깃하게 됐다.

6일 공개된 유고브 여론조사에선 처음으로 독립 찬성 여론이 51%를 차지, 반대 여론을 2% 포인트 차로 앞섰다. 불과 한 달 전 조사에선 반대 여론이 22%포인트 차로 우세했었다. 7일 공개된 TNS의 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은 39%로 찬성 여론(38%)과 대동소이했다. 한 달 전엔 6%포인트 차였다. 찬성 여론이 탄력을 받는 추세인 것이다.

방심하던 런던 금융가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최근 10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 파운드화의 달러환율은 1.61달러로까지 내려갔다. 스코틀랜드에 본부를 둔 스탠더드라이프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영국의 중앙 정가가 부랴부랴 나섰다. 보수당과 노동당·자유민주당이 함께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던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전면에서 반대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동당이 적극적인데 스코틀랜드에서 제2당인데다 중앙정부 집권 가능성까지 걸린 일이어서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 하원의석은 40석(영국 전체 650석 중 59석)이나 된다. 반면 보수당은 한 석에 그친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한다면 노동당으로선 큰 타격인 셈이다.

영국 왕실도 긴장 상태다. 런던에 있는 언론들은 스코틀랜드에서도 존경 받는 엘리자베스 2세가 직접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까지 한다. 왕실에선 “중립”이라지만 윌리엄 왕세손이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큰 뉴스가 있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스코틀랜드가 307년 된 영연방을 떠나 결국 독립할까. 반대 진영은 1995년 캐나다의 퀘벡주가 박빙의 차로 캐나다 잔류를 결정했던 일이 스코틀랜드에서도 재현되길 바란다. 그러나 “상승세를 꺾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에딘버러=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