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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돈|돈이 목적이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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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란 원래가 이법정민 한다는 뜻이다. 즉 법으로써 백성을 바르게 함이니 다스릴 「정」은 곧 바를「정」과 통한다고 하겠다.
바르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인이 올바른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뜻도 될 것이요, 생활 주변이 끼끗해야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정치인에게는 신조가 있어야 한다.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정치적 신조를 항상 잘 지켰는지 모르지만 정치인이라면 그 신조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신조가 지켜지지 않을 때는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왕왕 선거에 나서는 국회의원 후보자 가운데는 그 이력을 감추거나 속이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아 왔다.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 (광도)에 원자탄이 떨어져 히로시마 대학이 잿더미가 되고 모든 문서는 불타 버렸다. 그래서인지 한때 히로시마 대학 출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또 가짜 박사 소동도 있었다.
자신의 참 (진) 이력을 감추거나 속여서 당선이 된들 그 정치인은 정치의 길을 잘못 걷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몸가짐과 관련해 항상 주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돈 문제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에게는 더구나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출신구를 관리해야 하고, 사람들을 널리 사귀어야 하고, 또 선거를 치르자면 돈이 들게 마련이다.
정치와 돈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했을 때 그의 고향 친구가 천하를 무엇으로 잡았는가고 물었다.
「나폴레옹」은 즉석에서 「돈」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너무 엉뚱한 답변에 다시 돈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게 아닌가고 거듭 물었다. 「나폴레옹」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래도 역시 돈일세』라고 대답했다 한다.
그러나 이 고담에서 주의해 들어야 할 대목이 있다. 「나폴레옹」은 그 돈으로 천하를 샀지,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그렇지 못한 예가 너무 많았다. 어려운 처지에 있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인으로 양명을 한 후에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섭섭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정부에서 정치 자금을 보조한 적이 없었다. 정치인이 필요한 돈을 개별적으로 융통을 했다. 나도 해방 후에는 고향 정읍에 1백만평 가까운 땅이 있었다. 내가 정치를 하는 중에 친구의 협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 재산을 팔아 대었다.
한민당을 만들고 운영해 가는데 총재산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28평짜리 누옥 한간밖에 남은게 없지만 나 나름대로는 우리 나라의 정당 발전에 기여했다고 보람을 가지고 있다.
당을 위해 돈을 내면 낸 것으로 족하지, 그걸로 무얼 바라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또 정당은 정당대로 정치 자금을 모으면 재정을 맡은 부서가 이를 바르게 관리하고 그 내역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의 의혹을 사게 되고, 국민 속에 뿌리를 내리는 정당으로 자라기가 어렵게 된다.
진흙 밭에 개가 지나가면 자국이 남듯이 세상일이란 비밀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과거 민주당 시절에도 정치 자금으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선거 때면 신파는 신파대로 정치 자금을 지원하고 구파는 그들 나름대로 선거 자금을 따로 대주었다.
물론 당 자체에서 나가는 선거 자금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 자금이 정치 전부를 좌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 후 야당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면서 돈줄이라는게 파벌 형성의 큰 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돈이 정치의 대역을 해낸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치 자금과 관련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선거 풍토다.
나는 우리 나라의 정치 풍토가 깨끗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선거가 깨끗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영국의 선거 과정을 직접 지켜본 일이 있었다.
내 친구인 노동당 후보가 보수당 후보와 접전을 벌었는데 친구인 노동당 후보는 단 1표차로 보수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개표장에는 개표 참관인이란 것도 없었다.
우리 나라 경우라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개표장에서 소동이 일어났을 것은 물론이고 선거 소송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당 후보는 보수당 당선자에게 달려가 축하의 악수를 해주는 게 아닌가.
그는 당선자에게 『당신은 행운의 악마』라는 말로 축하를 해주었다.
1표차로 당선됐으니 행운이라는 거고 자신을 낙선시켰으니 악마라는 얘기다.
나는 제헌국회부터 6대까지 선거를 6번 경험했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읍 갑·을 구가 통합됐던 6대 선거에서 1백10만원을 쓴 것이 가장 돈을 많이 쓴 때였다. 그때도 몇백 만원, 몇천 만원을 쓴 사람들이 있었다. 선거 때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은 돈으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또 훌륭한 인물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었다.
돈만 가지면 안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폐습은 결단코 없어져야 한다. 평화 통일을 부르짖는 이 시국에 특히 그 점을 강조 해 두고 싶다. 우리의 평화 통일 정책은 유엔 감시 하에 남북한이 총선을 하자는 것이다. 비록 먼 장래의 일이긴 하지만 국민들은 미리부터 이에 대한 각오와 마음가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때에는 돈이 다 무엇이겠는가.
돈이란 정치의 수단이지 정치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은 정치자금을 깨끗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모으고, 관리하는「주인」이 되어야 한다. 돈의 지배를 받거나 정치자금의 줄을 따라 이합집산 한다면 그것은 정상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금은 참으로 어려운 시기다. 다행히 최근 사회 질서가 잡히고, 국력이 신장되고, 외국의 신뢰를 받는다니 마음 든든하지만 앞으로도 어려움은 많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정치는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항상 중용을 지킨다는 마음을 갖고 과부족이 없도록 자신의 주변을 항상 돌아보고 정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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