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한잔과 노변 노래로|이일옥 <포항제철 제1고노공장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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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강도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어야 단단한 제품이 된다.
쇠를 녹여 원하는 강철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내부에 응력이 발생한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 사용하거나 재 가공하면 질이 떨어진다. 이때 열처리를 하면 강철의 원소들이 안정된 위치로 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철강의 스트레스 해소다.
열처리란 철강을 가열하거나 서서히 냉각시키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작업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나 역시 쇳물과 씨름하다 보면 외부와 단절된 듯한 답답함과 함께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가까운 포항 송도의 바닷가로 나간다.
동해의 먼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확 트인다. 얼굴을 스치는 바닷바람은 나의 잡념을 모두 쓸어 간다. 기분이 내킬 때는 해변가 주점에서 가볍게 한잔 술을 기울이면서 바다에 대고 마음껏 소리친다. 그러면 그렇게 후련할 수 없다.
이것이 마음의 운동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주 간단한 또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은 용광로 앞에서 부르는 노래다.
쇳 속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균일한 철을 만드는 작업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삼복더위에 가장 무더운 용광로 앞에서 일하는 노전반 요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루의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런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제거한다.
『불나비는 불이 좋아 노전에 산다네…』
나도 큰소리로 따라 부른다.
이제 용광로의 쇳물과 일해온 지도 8년. 동해의 수평선이나 용광로가 내뿜는 황금빛 쇳물을 보면 이 둘의 숭고함에 시시콜콜한 일로 쌓인 내 스트레스는 저절로 몸밖으로 도망가는 습관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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