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공갈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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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먹 세계에서는 『코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범행을 하다 붙잡힐 경우 모든걸 저 혼자 뒤집어쓰고 조직의 계보나 다른 범죄사실을 발설하지 앓는다는 그들 나름의 의리를 나타내는 은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자신이 몸담아 일하던 회사의 비리를 미끼로 경영주를 협박, 거액을 갈취하는 공갈사범이 늘고있다. 새로운 화이트칼라 범죄다.
세상이 날로 비정해진다기 전에 그들의 변신이 뒷골목 세계의 의리보다도 못한데 한층 더 역겨움을 갖게 된다.
배신자들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기업체는 2중 3중의 고통을 받게 마련이다.
돈은 돈대로 듣기고 기업활동은 위축을 당하고 경영주는 사직당국에 비위사실이 적발될 경우 형사처벌이 두려워 전전긍긍하게 된다.
공갈과 협박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게 목적이다. 배신자들의 협박은 한번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유예적이다. 공포심이 상존하는 한 기업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검찰이 스스로 공갈범들로부터의 위해 사실을 고발하는 업체에 대해 형사문책을 면해주기로 한 것은 국가형벌권의 올바른 운영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범죄는 하나의 사회현장이요, 새로운 범죄는 사회현상의 새로운 수요라고 한다. 회사 상대 공갈범이 생겨난 데는 그 수요를 발생시킨 기업풍토가 문제이다.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성, 법적 책임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것이다. 신에 대하여 종교적 책임을, 개인의 양심에 대하여 윤리적 책임이 있듯 기업인은 질서사회에 대한 법적 책임성을 새겨야만 한다.
우리 사회가 공갈범을 미워하면서도 그들에게 당합 기업과 경영주의 「법적인 비난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소비자보호단체 간부 집에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심야의 협박전화는 한층 우리를 오싹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헙박자의 통고란 그만큼 더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행위가 정당하며 어떤 권리가 보호되고, 어떤 책임이 어떻게 추궁되는가가 분명히 제시되는 소위 「법적 안정성」(Legal stability)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고정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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