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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영어회화 공부|젊은 수강생들 틈에 돋보기 낀 할머니보고 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 아이 중 막내가 유치원을 면하기까지 내 머리 한구석은 나도 모르게 녹이 슬어 언젠가는 부식되리라는 피해망상과 두려움 속에 녹만이라도 슬지 않게 기름을 쳐보자는 생각에서 영어회화 강습소엘 다니기로 했다.
발랄한 대학생 아니면, 젊은 패기에 찬 신입사원들로 강습소 안은 만원이었는데 삼십대 후반에 선 내가 마치 개밥에 도토리 격으로 어색한 구성원이 된. 것이었다. 아침이면 스크린이 잘 보이는 앞자리를 찾아 서성대는 나룰 혹시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이방인을 보듯, 의아해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제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총 세례는 문제가 아니었다. 스크린과 함께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말소리가 웅웅대는 벌 소리로만 둔갑해서 내 귀를 울리고 있었다.
단어 몇 개만 가끔씩 들려올 뿐 별안간 듣지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나는 처량히 앉아 잘 생긴 배우들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강사 선생님이 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부인은 왜 영어 공부를 하러 나오십니까?』라고 천천히, 그러면서도 똑똑한 목소리로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당황해진 난 얼떨결에 그래봬도 나는 말은 할 줄 아는 벙어리라고 과시하듯 의당 영어로 대답해야 할 것을 우리말로 자신 있게 말해버렸다. 『젊음을 배우고 젊어지려고요.』의외의 대답에 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의 냇물은 내 가슴에서 그칠 줄을 모르고 피어올랐다.
수많은 시간들을 남의 나라 말 듣고, 말하기보다는 쓰고 읽는 데만 낭비해 드디어는 멀쩡한 벙어리가 돼야하는, 우리 세대, 아니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잃어버린 시간을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끈기가 없어 탈이라고 내 자신을 나무라면서 찬란했던 계획을 포기,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집에 틀어박혀 나의 장기(?)인 애들이나 보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와글대는 수강생들의 휴식시간 속에서 두터운 돋보기를 낀 채 무릎에 놓인 영어책 구절구절을 줄짚어 가며 열심히 암송하는 할머니가 있지 않은가. 그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던들, 나는 끝끝내 말못하고 말 듣지 못하는 벙어리로 외국인 기피증에 걸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인기 초반에서 반복해서 하루 2시간씩 연속 강의를 들으신다는 그 할머니. 자식들한테 받은 용돈으로 젊었을 매 못 다한 공부를 죽는 날까지 해서 죽음의 관속에 지식의 and치들을 함께 넣어 가지고 가시겠다던 그 멋지고 지칠 줄 모르는 할머니의 끈기를 그 순간 나는 배웠다.
요즘 와서 외국어의 생활화를 강조하는 기사를 대할 적마다 한 덩이의 찬 수박을 깨물 듯 더위를 잊게 한다. 어서 실현되어 맑고 티없이 자라는 저 어린아이들은 엄마와 같은 빈 추수는 말아야 할 터인데…. <김수홍(주부) 서울 은평구 귀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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