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부실 점검이 낳은 불량 불꽃감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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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일 불량 불꽃감지기를 제조·설치한 혐의로 K사의 김모 대표와 이모 기술이사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2006년부터 불량 불꽃감지기 2만3000여 대 190억원어치를 판 혐의를 받고 있다. 불량 불꽃감지기는 숭례문·경복궁 등 문화재, 국회의사당·정부세종청사 등 국가 주요 기관, 신고리·고리·울진·영광 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됐다고 한다. K사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성능시험 때는 성능이 좋은 신형 센서를 장착한 뒤 실제 납품할 때는 값싼 구형 센서를 붙였다. 속칭 ‘속갈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문제는 불량 불꽃감지기를 설치한 피해자들이 교체비용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경찰로부터 불량 불꽃감지기 설치 현황을 통보받자 관할소방서에 점검과 교체를 지시했다. 하지만 교체비용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알아서 교체하라는 얘기다. 피해자들 입장에선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K사에 구상금을 청구해야 하지만 확정판결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또 사실상 파산 상태인 K사가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실 불량 불꽃감지기가 대량 유통된 데는 소방기술원 등 소방당국의 책임이 크다. 업체가 조작한 사전 시험검사 결과만 믿고 실제 제대로 된 제품이 유통됐는지 사후 검사는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전 가동 중단 사태를 빚은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조작사건과 비슷하다. 만약 소방당국이 실제 설치된 제품 중 일부만 무작위로 점검했더라도 업체의 사기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불량 불꽃감지기 사건은 자칫하면 대형 화재를 유발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업자만 처벌하고 소방당국의 부실한 안전 점검 시스템을 그대로 둘 경우 K사 같은 악덕 업체가 또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번 기회에 정부당국의 안전 관련 제품·장비에 대한 점검 시스템을 확 바꾸어야 한다. 악덕업자들에게 속아넘어가기 쉬운 사전·정기 시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후·상시·비정기 점검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