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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발식 사랑, 주성치식 연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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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그러나 사랑과 거리가 먼 <도신> 주윤발 주윤발은 부드럽다. 어떤 어려움을 겪고도 양쪽 입 꼬리가 매력적으로 올라가는 그 웃음은 부드럽다 못해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전쟁 처럼 게임을 치루고, 전쟁보다 더 격렬한 ‘총싸움’ 마치고 보여주는 그 웃음은 주윤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말아톤>의 초원이 미소를 보고 많은 사람이 울었던 것처럼 홀로 돌아서는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 부드러운 남자는 왜 항상 혼자 남겨지는 것일까. 이 남자는 왜 항상 비극적 사랑의 결말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할까. 연인을 두고 먼저 떠나거나(와호장룡) 연인과 함께 가거나(첩혈쌍웅), 아니면 연인을 먼저 보내고 쓸쓸하게 돌아선다(도신). 그래서 이 남자의 사랑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일지 모른다. 일본의 어느 영화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다. 러셀 크로우는 전장에 있어도 언젠가는 가정으로 돌아갈 듯한 이미지가 있고, 멜 깁슨은 평화로운 가정에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전장으로 떠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주윤발의 사랑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평화롭게 시작했으나 이미 비극을 잉태한 것 같고, 비극적으로 시작된 운명은 헤피엔딩을 멀리 한다. 그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시작하거나 비극으로 끝나거나… 그래서 <도신>에서 보여준 행복한 한 때가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사랑을 부정하지 않으나 사랑의 완성(과연 사랑에 완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을 보지 못하는 그가 <도신귀환 뉴 포커>에서 어떤 사랑을 그려 나갈지가 또 다른 관심거리로 지목되었다. 주성치와 콤비를 이룬 상태에서 비극적 사랑을 그릴 수 있을지, 아니면 주성치와 말도 안되는 삼각 로멘스를 펼칠지 아직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그저 ‘느낌’으로 보건데 주윤발은 사랑에 강하고 주성치는 사랑에 약하다. <도신>에서 그는 애인의 죽음을 알고도 태연하게 모른 척 마지막 게임장으로 향한다. 어찌 보면 냉혈한 처럼 보이지만 복수의 일념이 피를 차갑게 식힐 정도로 사랑했다는 뜻도 된다. 해피엔딩 사나이 <도성> 주성치 하지만 주성치는 뜨겁다. 그 여자를 본 순간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 때문에 인생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야기의 본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부터 영화는 주성치의 연애담을 골자로 삼는다. 잘 먹히던 초능력도 그 여자 때문에 망가지고(도신) 희극적인 그의 인생도 ‘희화된 비극’의 극치를 보여준다. <쿵푸허슬>의 장면 중에 코브라에 물려 퉁퉁 불어터지다 못해 펠리컨 처럼 늘어진 입술을 부르르 떨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그 장면이 육체적 괴로움 때문에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실패한 충격 때문에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이라면 정말 주성치 다웠으리라. 주윤발이 비극적 사랑으로 가슴을 아리게 하는 느와르의 전형을 보여줬다면 주성치는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즐거움의 끝을 맛보게 해주었다. 서로 다른 매력 때문인지 상대역인 장민 역시 도신과 도성 두 영화에서 사뭇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둘의 사랑과 연애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중간이 없다는 것이다. 둘의 사랑은 모두 다른 차원에서 가장 강한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진리가 두 사람을 <도신귀환 뉴 포커>로 불러들인 것이 아닐까. 그러나 잠깐!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영화는 어떤 맛이 날까? 식초와 설탕이 만나 새콤달콤하고 고추와 물엿이 만나 매콤달콤하단 말은 들어봤다. 꿀에 절인 홍삼이 달콤쌉싸름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윤발식 사랑과 주성치식 연애가 한자리에 모인다면? 알레그로 아다지오로 편곡된 교향곡을 감상하는 맛? 그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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