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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0)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37) 한표욱|「아이크」의 이대통령 방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승만 대통령의 불쾌감 표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얘기가 있다.
우선 내가 아는 얘기부터 말하자면 귀국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다가 거의 도착할 무렵에 이대통령의 전갈을 접한「아이젠하워」는 아연실색했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김포로 가던 차를 돌려 경무대에 들어가 이대통령이 하는 얘기를 거의 말없이 듣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클라크」장군의 회고록은 이 대목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아이크」가 많은 회의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하오 늦게 다시 전화를 걸어「아이크」가 방문할지의 여부에 관해 알려주기로 이대통령에게 말했다. 이대통령도 좋다고 동의했다.
하오 늦게 다시 이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내가 찾아가 뵐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좋다는 대답을 듣고 나는 곧 중앙청 뒤에 있는 그의 관저로 달려갔다.
평상시 차림 나는 그의 거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전과는 무엇인가 달라 보였다. 문을 열어 준 사람 외에는 그 방이 텅빈 것 같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때였다.
이박사가 거실로 들어왔다. 나는「아이크」의 편지를 전했다. 그의 표정은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봉투도 뜯기 전에 그는 이 봉투가「아이크」가 그를 방문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느낀 것 같았다.
「아이젠하워」의 방문은 이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자기 나라를 방위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기여를 한 미국 사람들과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이대통령에게「아이크」가 하오5시45분에 그를 답방해 몇 분간 이한 인사를 할 것이라고 말해 줬다.
이박사의 얼굴은 금방 환해졌다. 그러자 잠깐 실례한다면서 나갔다가 들어왔다.
나는 늘 하던 대로「프란채스카」여사에 대해 물었다. 이박사는 「아이젠하워」대통령이 올 것이기 때문에 「프란체스카」를 나가라고 했으며 남자들끼리 만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나는「아이크」가「프란체스카」여사를 만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아이크」가 왔을 때는「프란체스카」여사도 그 자리에 있었다.「아이크」는 일행과 함께 관저에 들어왔다. 출발 직전이었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아이크」가 작별을 고하자 이대통령은『내 각료들을 소개하겠다』면서 방을 나갔다. 문이 열리자 방은 사람들로 가득 매워졌다. 분명히 이박사가 미리 불러 대기 시켜 놓은 것 같았다. 정장한 그들은 우리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사진사·무비 카메라맨 등이 들어왔다.
이박사는 「아이젠하워」가 자신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멋지게, 기록해 남기게 했음이 틀림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잠시 후 방을 나갔다. 그러나 그는 쉽사리 행사를 피할 수 없었다. 경무대 밖 도로에는 불빛이 휘황했고 한국군 3군의장대와 군악대, 그리고 사진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마치 할리우드의 개봉 전야제 같았다.
「아이젠하워」는 71시간30분 동안 한국에 머물렀고 이대통령과는 1사단과 경무대에서 두 번 간단히 만나고 밤8시 이한 했다.
한국전을 승리로 이끄는 문제도, 전쟁을 휴전으로 끝맺는 문제도 일체 거론되지 않았다.「아이젠하워」는 한반도의 본질 문제는 입에도 올리지 않은 것이다.
그의 방한은 선거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제스처였고 그나마 알맹이가 없는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했다.
한국이 휴전 협상을 반대하고 있었고 특히 이대통령이 그 반대에 앞장서고 있었기 때문에「아이젠하워」는 이대통령을 피하려고 했던 것 같은 인상이었다. 미대통령이 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례였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전쟁에서는 승리를 능가하는 것이 없다』고 말했던「아이젠하워」도 당선 후 한국에 왔을 때는 이미 마음속으로「명예로운 휴전」으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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