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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못간 상해출신 「20년 쌓인 울분」폭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해 겨울에 중공의 변경 신강생에서 수만명의 청년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며, 이에 동정한 상해의 청년들도 여러차례 대규모시위를 했다고 연초 외신들이 전했다.
최근 이 신강소요사건에 가담했던 중공청년이 소요사태의 진상과 그 배경을 폭로한 글을 홍콩의 좌익 「쟁오」지에 기고하여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중공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애초에는 이 사건이 문화혁명 이후 상해에서 신강으로 하방(중등교육을 마치고 2,3년간 농촌이나 공장에서 현장실습하는것)된 수십만명의 청년들이 상해귀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는 신강사건을 체험했다』는 노문은 소요의 주체가 상해출신의 청년들이고 그요구조건이 상해귀향임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규모나 배경, 그리고 소요의 진행과정은 바깥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고 했다.
58년에 시작된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재정이 궁핍했던 중공은 60년대초 대학입학생모집을대폭 줄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못한 많은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었던 중공당국은 그들을 변방지역에 강제로 이주시켰다.
63년부터 67년간 상해의 청소년 10만명이 당국의 계획에 따라 신강에 이주했다. 대부분이 강제로 이주한데서 문제가 싹텄다.
17, 18세에 상해를 떠났던 이들은 현재 35, 36세의 장년이되어 혼인하여 자녀들까지 두고 있다. 그들중에는 7O년대초 소수가 고관의 친지관계를 이용해 귀향했다.
76년 사인방이 몰락하고, 77년 등소평(당부주석)이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하면서『도시의 청소년들을 시골에 보내는것은 근로자의 재산만 축내고 인심만 잃은것』 이라고 공언했다.
하방펑년들의 귀향이 실현되자 북경이나 천진출신들은 거의 다 자기고향으로 돌아갔는데상해출신만은 곳곳의 시골에서 귀향조치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신강의 상해출신들이 불만에 차있는데 운남생의 상해청년들은 소요를 일으켜 그결과로 귀향하게 됐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신강의 상해출신들도 79년봄 아커수(아극소)에서 상해청년연합회를 결성하고 10여명의대표를 쁩아 4월중순에 북경에 민원사절로 파견했다.
북경에 간 대표들은 국가농간총국에 그들들 상해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면서 관계자료를 제출하고 총국고위간부와 담판했다. 그들은 10일간의 줄다리기 끝에 총국이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 현지책임자와 상의하여 그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아커수로 귀환했다.
그러나 1개월후 상해청년들이 다시 그런 조직적 행동을한다면 엄중조치하겠다는 경고만 받았을 뿐이다. 속았다는 분노가 폭발한 상해청년들은 다시 제2차 북경진정단을 조직하여 기차를 타려했지만 역에서 경찰에 붙잡혀 1개월간 옥살이만 했다. 대표들은 북경에서 소요를 크게 일으켜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전략을 세웠는데 이것이 북경에 탐지되어 사전에 저지된 것이다.
아커수지구의 상해청년들은 그러나 80년 겨울에 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수천명이 모여 규모의 시위를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어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커수지구 공안국의 간섭을 받자 수천명의 청년들은 참았던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여 공안국과 관청건물을 점거했고, 소문이 퍼지자 농장의 청년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노문은『이 대규모의 군중운동은 점차 조직적이 되고 목적을 갖게되었으며 더우기 통일된 행동의 보조를 갖게됐다』고 의식의 변화를 대견해했다.
이 사건에는 폴란드 자유노조의「바웬사」같은 지도자 구양연도 나왔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결의라고 밝힌 구양연은 l천여명의 상해청년을 강력하게 지도하여 7일동안 단식투쟁을이끌었다.
7일째 2백여명이 쓰러졌다. 단식투쟁과 함께 또다른 대규모의 청년들이 북경방문을 위해우룸치역으로 밀려갔다.
이렇게 되자 아커수지구정부는 상해청년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동의했다. 각 지역에서 환송회가 열리고 근 20여년간의 그들의 고생을 위로했다. 이 지구관리나 당원들로 거의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고급관료들의 탄압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않았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상해출신들이 귀향하려했을때 다시 난주부대의 군을 동원하여 상해귀환을 저지했고 그들의 행동을「반혁명사건」으로 규정했다. 현재 상해출신청년들은 다시 원점에 섰고 위기는 계속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다.<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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