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해외 유학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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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 반가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재일 교포와 결혼하여 지금은 일본에서 살고있는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였다.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하여 벌써 6살 난 아들과 4살 난 딸을 두고있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모국에 정착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묵살되어 할 수 없이 일본으로 되돌아갔었다. 그때 그녀는 자녀 교육에 무척 고민이 많아 보였다.
어머니 나라에서 교육시키지 못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아이들이 전혀 고국의 개념을 상실하지나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상념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묘안을 짜낸 것이 매년 가로수의 푸른 잎이 그 싱싱함을 자랑할 때인 6월초부터, 양의 무리가 떼지어 다니듯 여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8월말까지의 성하의 계절에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에 나와 친정에서 석달 동안 머물겠다는 생각이었다.
과연 3년 전부터 그 친구는 사업상 일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남편을 남겨두고 혼자서 어린 두 애들을 억척스럽게 데리고 나와 애들의 외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석 달을 살다가 가곤 한다. 그런데 작년에는 뜻밖의 문제가 생긴 듯 하다. 1년의 4분의3을 지내는 일본에서의 생활과 3개월간의 우리나라 생활의 차이점을 애들이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의 어린이 프로나 장난감 같은 것에 곧 싫증을 내고는 아파트(일본)로 돌아가자고 조를 때, 사실상 난감해지고 한두 번만 만지면 고장나버리는 장난감에 야속한 생각마저 든다고 한다. 앞으로 아이들이 더욱 자라게되어 그들이 문화의 상치됨을 구별해낼 때, 엄마나라 가기 싫다고 할까봐 겁도 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그 친구의 말은 요즈음 대폭 완화된 해외유학과 해외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것을 생각케 한다. 해외여행과 유학 길이 넓어졌다는 것은 문호 개방이란 면에서 우선 반갑고 분단 민족으로서 겪어야했던 어려움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해 기쁜 마음이다.
선진국의 문물을 마음껏 접하면서 공부하게될 장차의 학생들을 생각할 때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쁨 뒤에 왠지 어깨를 내리누르는 일말의 불안감이 깃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인으로서 어깨를 겨루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일부 계층에만 돌아가고 사고력이 한창 개발될 때인 중·고교생들까지 무분별한 유학 길에 오를 때 그렇지 못한 계층과의 위화감을 어찌할 것인가.
내 친구가 겪는 교육의 어려움이 이제는 우리민족 전체에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의 혁신이 부작용 없이 시행되기를 바라면서 일본에서 가끔 외롭고 힘든 생각이 들면 「제비」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른다는 내 친구의 성실한 모국 교육이 다시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임부희(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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