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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렵고 진물러도…바를 약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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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원성=허남진기자】한 마을 20여 가구 모두가 옴에 걸려 긁적거린다. 조그마한 시골국민학교 분교 생 57명 가운데 53명이 옴으로 괴로워한다. 주민들의 무지와 겉치레 방역 속에 옴은 하루가 다르게 심각할 점도로 번져가고 있다. 건국에 번지고있는 옴 소동의 진원지 강원도 원성군 판부면 금대3이4반. 치악산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아담한20여 가구 산골마을. 그리고 바로 옆에 자리잡은 애신분교. 푸른 산, 맑은 물, 어디를 봐도「옴 붙은 마을」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구에 들어서자 마주치는 사람마다 목이며 팔목언저리가 유난히 발갛게 부어 올라있다.
이 마을에 옴이 번지기 시작한 것은 한달 전인 5월 말께부터. 애신분교 어린이들이 하나둘씩 앓기 시작, 한달 사이 온 마을로 번져 지금은 집집마다 1명 이상의 환자가 앓고있고, 전교생57명 중 53명이 고통을 받고있다.
『밤엔 가려워서 잠을 못자요. 엄마도 긁고, 언니도 긁고, 나도 긁으면서 밤을 새워요. 학교에서도 겨드랑이·정강이가 가려워 공부를 못해요.』애신분교 3학년 심정숙양(10)은 정강이 살갗이 진물러 딱지가 앉아있었다. 목 언저리엔 좁쌀 만한 붉은 반점이 수없이 돋아있었다.「심양의 6식구가운데 어머니 황음전씨(46)·언니경숙양(16·원주성화여중2년)도 옴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20여 일전 정숙양이 걸린 뒤 1주일만에 언니, 이어서 어머니가 차례로 걸렸다. 아버지 심재원씨(50)와 오빠 경보군(13·애신분교6년)등 남자 3명만 아직 안 걸렸으나 식구들은 모두 한방을 쓰고 있다. 이웃 박춘화씨(61)집도 외손자(2)가 옴에 걸려 팔목·겨드랑이·정강이·사타구니·목은 물론 얼굴에까지 붉은 반점이 솟아 보채고 있었다.
애신분교 교사 박남근씨(45)는『누가 먼저 걸렸고 어떻게 전파됐는지 모르지만 한달 쯤 전부터 번지기 시작, 요즘은 수업 중에 어린이들 몸을 긁느라 수업을 제대로 못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박교사 가족8명도 모두 옴에 걸렸으나 원주시내에서 약을 사다 바르고 나았다는 것.
원성군 보건소 방역진은 지난13일 애신분교 어린이들에게 손톱 만한 2g짜리 연고 1통씩과 환자격리수용 등이 적힌 옴 예방수칙 전단을 나눠주고 떠났지만 주민들은 환자를 격리수용 할 방도 따로 없다.
『옴이야 예전에 흔했지. 때가 뒤면 없어지겠지.』한결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 일부 주민들은 가려움증을 견디기 어려울 때면 유황이나 개 버들개지를 태워 연기를 환부에 쐬거나 담배 진을 살갗에 바르는 것이 고작. 그러는 사이 환부는 더욱 진물러 터지는 등 악화되기 일쑤이나 병원은 고사하고 약을 사다 바를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시중약국에서 옴에 좋다는 유황연고제는 1인20일분용인 4백50g짜리가 4천5백원. 농촌가정형편으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원성군 소초면 교항2고 독점마을도 옴 집단발생마을. 집집마다 1, 2명의 옴 환자가 앓고 있다. 이 마을 김종후씨(43)는『얼마 전 2㎞쯤 떨어진 신촌부락에서 옴이 나돈다는 말이 있더니 며칠사이 이 동네에도 옮겨와 20여 가구가 대부분 걸려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원주시내 각급 학교에서도 상태는 심각했다. 시내명륜동255 대성 중·고교의 경우 전체학생2천7백여명 중 9%인 2백56명이 옴 환자. 교장김경록씨(59)는『격리수업을 고려중』이라고 했다.
원주시 보건소가 집계한 지난27일 현재의 시내 옴 환자수는 2백4명뿐. 이는 대성 중·고교 환자수 2백56명 보다 적은 숫자다.
약품도 모자라 원성군 보건소는 군거래 약국에서 1백여만원 어치를 외상으로 구입, 우선 학교 글 중심으로 관자학생들에게 1회 분식의 약을 나눠주었다. 그것이 바로 10g짜리 연고통과 엄지손톱 만한 연고. 환자한 사람이 한쪽팔목에 바르기도 모자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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