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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프로 축구는 「토틀·사커」의 모델"|휴가차 일시 귀국한 허정무 선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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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적자생존의 원칙이 철저하더군요. 실력 없으면 여지없이 도태되고 말지요.』
허정무 선수는 네덜란드의 프로 축구계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미지의 네덜란드 프로계에 뛰어든 허 선수는 지난 10개월 동안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초를 겪었으나 인내와 의지로 이를 극복, 마침내 『낯선 토양에 가느다란 뿌리를 내리는데 간신히 성공했다』고 말했다.

<실력 없으면 도태>
휴가차 일시 귀국, 오는 7월 중순까지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여가를 즐기게된 허 선수는 네덜란드 프로 축구를 소개하면서 그동안의 고생담까지 털어놓았다.
-소속팀인 필립스아인트호벤에서 정말 스타팅 멤버의 위치에까지 올랐는가.
▲필립스 팀엔 네덜란드 국가 대표를 지낸 선수가 10명이나 된다. 80∼81년 시즌의 우승팀인 아제트 67팀 다음으로 많다.
따라서 내가 이 팀의 주전 선수가 되었다는 얘기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포지션은 미드필더 (링커)다. 지난 5월엔 네덜란드 리그의 베스트 11에도 뽑혔다.
-언제부터인가.
▲지난 4월부터다. 그전까지 나의 우여곡절은 참으로 비참하기도 했고 성공과 좌절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후반기 리그가 시작되자 나는 주로 레프트윙으로 자주 기용되었다.
그 첫 게임인 FC 덴하그와의 경기에서 나는 첫 골을 기록,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2월말 연습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을 크게 다치는 사고로 무려 4주간이나 쉬어야했다. 부상이 회복되자 코치는 나를 미드필더로 뛰게 했고 이때부터 주전의 자리를 굳혔다.
-그럼 입단한 작년 8월부터 연말까지는 어떻게 지냈는가.

<베스트 11에 뽑혀>
▲처음 5게임을 내리 15분간만 출전시켰다. 그 이후에도 연말까지 비슷한 생활이었다. 실의와 좌절을 여러번 느꼈지만 이 5개월간의 견습 생활이 좋은 자기 수양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차별 대우가 없었다고
▲구단 측이 아니고 선수들이 처음엔 나를 몹시 멸시하는 투였다.
그러나 2, 3개월 후 실력으로 그들과 대등해졌을 때 그들은 저절로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술로는 안 통해>
-네덜란드 축구의 특색이 뭔가.
▲소위 토틀사커의 모델이 아닌가 싶다. 개개인의 포지션은 큰 의미가 없다. 공격 땐 전원이, 수비 때도 역시 전원이 가담한다. 그리고 전후반 90분을 전력 질주한다. 그래서 다분히 저돌적이다.
-기술보다 힘의 축구를 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철칙이다. 다만 슬로 (느림)라는 개념이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패스는 정확하고 강하고 빠르게』라는 말처럼 모든 플레이에 스피드를 강요한다. 축구를 재미있게 하고 팬을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추세라고 생각한다.
-주력이 중요하겠는데-.
▲1백m를 10초대에 달리는 주력 따위는 중요치 않다. 순발력은 물론이고 줄기차게 치닫는 스태미너가 더 중요하다. 스피드에 관해 선 나도 빠르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다만 스피드는 체중과 힘이 얹혀진 것이어야 한다.
기본 기를 완벽히 터득해야 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볼을 잡으면 머뭇거림이 없이 책임지고 효과적으로 처리 (슛 혹은 패스) 하라』는 것이 항상 강조되는 말이다.

<안전주의는 금물>
기술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태클이었다. 정확한, 합법적인 태클과 태클 후 오뚝이처럼 곧바로 일어서 다음 플레이 동작으로 들어가는 기술은 아마 한국 선수들이 가장 뒤떨어진 분야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 한국 축구와 특별히 대조적인 면이 있다면-.
▲모험 정신이다. 상대 진영에서 찬스를 만들거나 슈팅을 할 때 소심한 안전주의는 야유를 받기 십상이다. 몸이 부서지라고 내던지며 과감하고 모험적인 플레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철저한 승부 근성 때문인 것 같다. 프로 선수들은 여가중이라도 축구 관건 (TV시청도 포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정도로 직업 의식이 철저하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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