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장애인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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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듯이 올해도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각 방송사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EBS의 '열려라 신나는 학교'는 29명의 장애학생과 1천5백명의 비장애학생이 '함께 배우고 즐기는' 수원 청명고등학교 이야기였다.

SBS는 '사랑의 릴레이-희귀병 환자에게 희망을'을 1백분간 생방송했고, KBS2는 시각장애 자매가 주인공인 다큐드라마 '10년 전의 약속'을 내보냈다. MBC는 청각장애 부모가 등장하는 외화 '비욘드 사일런스'를 특선영화로 보여주었다.

장애인복지법 제 4조에는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이에 상응하는 처우를 받는다'라고 나와 있다. 이것이 법이다.

그런데 과연 법대로 되고 있는가. 텔레비전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분히 이중적이다. 그들도 똑같이 세상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기회 있을 적마다 주장하면서도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하는 상차림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TV에서 본 장애인의 모습 중 기억에 남는 몇 장면이 있다. '그 얼굴에 햇살을'의 가수 이용복씨는 시각장애인이다. 어느 날 슬며시 TV에서 사라지더니 얼마 전 'TV는 사랑을 싣고'에 반가운 모습을 보였다. 놀라운 건 여전히 그가 '명랑하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구김살이 없었다. 몇 십 년 만에 초등학교 은사를 만난 자리에서 개구쟁이 소년처럼 "선생님 얼굴 한번 만져봐도 되죠"라고 말한다. "전 만져봐야 진짜 우리 선생님인 줄 알 수 있거든요"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띄울 줄도 알았다.

또 하나는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첫 번째로 '양심냉장고'를 받은 부부다. 그들은 인형을 만들어 새벽에 납품하며 살아가는 부부였다. 새벽까지 초조하게 기다린 이경규 일행을 그들은 마침내 울려버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카메라와 조명 앞에서 그들은 "신호…는 지키…라고 있는…거…잖아요"라고 힘들게 말하면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프로를 보며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장애인이라고 부르는가?'라며 스스로 반성한 시청자가 많았을 것이다. 보는 사람 없다고 정해 놓은 약속을 어기며 신호를 무시하고 쌩쌩 달린 사람들이 실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잔치가 끝난 후가 문제다. 장애인의 날에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이고 그것이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범속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오히려 장애인들을 더 고단하게 만드는 일이다.

다행인 건 KBS가 장애인의 날인 지난 일요일부터 자막방송의 비중을 늘렸다는 사실이다. 이제 '개그콘서트'도 자막방송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아직은 방송시간 대비 9%(주당 6백70분)에 불과하지만 가을 개편 때는 15%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숱한 드라마 중에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한 편쯤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장애인이 진행하는 교양, 혹은 오락 프로가 하나쯤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이중적 시선을 바로잡지 않는 한 TV는 건강한 사회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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