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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정치인들, "정치 배제" 약속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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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권 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정기국회 개원일인 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선 그간 전혀 언급되지 않던 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돌출했다. 신공항 입지를 놓고 ‘가덕도(부산) 대 밀양(대구)’의 갈등구도에 관해서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의 지역구는 국제공항이 있는 경남 김해다.

 “2011년 3월 신공항이 백지화될 때까지 엄청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다. 이런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가 해법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이 갈등에 기름 붓는 행동을 해선 절대 안 된다.”

 그러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 말미에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과거 입지 선정 당시 지역 간 엄청난 갈등을 야기했다. 그 중심에 정치권이 있었다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모든 건 입지선정위원회에 맡기고 정치권은 애향심보단 애국심에 입각해 일절 발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에선 이 발언이 최근 “물구덩이(부산 가덕도)보다 맨땅(경남 밀양)이 낫다”고 한 홍준표 경남지사를 겨냥했다고 본다.

 지금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정치논리 배제’를 얘기한다. 대구·경북의 차세대 리더로 꼽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도 ‘여권 화약고 영남 신공항’이라는 본지 보도(9월 1일자 5면)를 보고 연락해 왔다. 유 의원은 “대구와 부산 정치권은 극단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자제하고 정부의 결정에 승복하기로 사전에 합의하자”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옳다. 우리 현대사는 정치 논리의 백해무익함을 귀납적으로 증명해 왔다. 갈등을 풀기는커녕 확대재생산해 왔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허우적대는 지금의 정치권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영남권 신공항 이슈 자체가 태생부터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다가 해법을 찾을 수 없자 2011년 ‘없던 일’로 덮었다. 이듬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이 카드를 공약으로 다시 꺼내 들었다. 논쟁은 다시 불붙고 있다.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이해가 충돌하는 신공항 이슈에 영향받는 여권 내 ‘힘센’ 정치인은 너무나 많다.

 그런 만큼 투명한 절차와 깨끗한 승복이라는 뻔한 답 외에 뾰족한 해법은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뛰었던 부산 지역 한 의원의 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영남권 신공항 공약을 반대했었다. 동북아 물류허브를 노리는 중국 해안가 공항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주사위가 던져졌다. 지역 개발 등의 작은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큰 그림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권호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