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냐 제단이냐 다시 불붙은 첨성대 논쟁-과학사학회 주최로 경주서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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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해묵은 첨성대논쟁에 또다시 불어 붙었다. 지난6, 7일 경주에서는 한국과학사학회주최로 제3차 첨성대 토론회가 열려 30여명의 학자들이 연 이틀 열띤 논쟁을 벌였으나 결론은 원점에 되돌아온 것.
천문대냐, 제단이냐, 상징적 기념비냐는 논쟁은 앞으로 결정적 근거가나오지 않는 한 계속될 전망이다.
첨성대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73년12월 서울대사대에서 열린1회 첨성대토론회부터.
이 때부터 서서히 재단실이 고개를 들기 시작, 제2차 토론회(79년8월·소백산천문대)에서는 당당하게 천문대설과 맞섰다.
제단실의 등장원인은 신라의 천문기술이 보잘 것 없어 일월식 관측기록이 많이 틀린다는 것과 도대체 첨성대는 관측대로서 적합치 않다는 점에서였다. 3차 토론회에서도 각 그룹의 학설이 팽팽히 맞서 감정대림일보직전의 순간까지 이르렀었다.
어쨌든 첨성대의 신비는 해가 갈수록 더해 가는 느낌인데 「학자적 자세」문제까지 등장, 서로 언성을 높인 3차 토론회의 주장들을 요약하면-.
첨성대의 방위가 정남향이 아니기 때문에 천문대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천문규칙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측정기기만 방위를 맞추면 되지 건축물은 지형에 따라 아무래도 상관없다.
또 첨성대 상부의 정자형이 관측을 하기에는 너무 좁다고 했는데 실제 한 변의 길이가 2·2m이므로 소형 관측기기를 가지고 올라가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다. 이외에 증보문헌비고 상위고를 보면 신라의 천문관측기록 수는 1백41번으로 백제62번, 고구려34번을 능가한다.
첨성대가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라고는 볼 수 없으나 천문관측을 했다는 것은 틀림없다(새로 논쟁에 뛰어든 연세대 나일성 교수) .
첨성대의 각 부분을 비례 분석해 보면 놀라운 수학적 결과가 나온다.
즉 높이·바닥 직경 등은 9대41이라는 기본비례를 갖고있다. 이 비율은 주역에서 인·지·천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첨성대는 왕가의 길흉을 점치는 점성술을 위주로 한 천문관측소다(전 성균관 교수 송민구씨).
첨성대는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뜻하는 수미산을 본 뜬것으로 종교적 상징을 안치하던 일종의 제단이다. 당시의 신라형편으로 첨성대에 올려놓을 관측기기는 없다고 보며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기록도 없다.
첨성대의 천문설은 후대의 기록인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동국대 이용범 교수) .
무슨 소리냐. 과학적 방법에 의한 조사결과 정상부에 훌륭한 관측 작업장이 확인됐다. 천체 관측을 목적으로 한 실용적 상실 관측대임에 틀림없다(서울대 남천우 교수).
첨성대를 현대적 눈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중국천문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7세기 중엽에 건조된 것이므로 구체적 실용보다는 상징 또는 기념비적인 것으로 수미산을 본떠 만든 아주 넓은 의미의 전문대다(외국어대 박성래 교수) .
실물과 기록만 갖고 말하면 안 된다. 각국의 천문학과 여러 천문대의비교연구가 필요하다. 아직 문헌연구도 미흡하다. 앞으론 과학적 측면보다 신라의 문화, 사회적 측면의 연구가 보충되어야 한다(서울대 유경로 교수). <장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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